히포크라테스의 죽음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어제 오랜만에 친구들과 늦은 밤까지 담소를 나눴다.

우리 동네 유명 병원 원장이 후배라는 소식에

화제는 자연스레 건강과 병원으로 흘렀다.


한 친구가 치질 수술 후 받은 연고 이야기를 꺼냈다.

“항문에 바르는 마데카솔 같은 건데 7만원!

똥구멍을 누가 본다고 그런 비싼 연고를?”라며

항의하자 의사가 바로 환불해 줬다고 했다.


비급여 항목이라 실손보험이 안 됐고, 과잉 처방의 전형이었다.

나도 격하게 공감했다.

나 역시 최근 잠을 자다가 화장실을 자주 찾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설명 없이 복부 초음파부터 시켰다.

과거엔 소변 검사로 시작해 결과를 보고 추가 검사를 했는데, 요즘은 막무가내다.

실손보험이 있으니 저항 없이 받았지만, 병원 갈 때마다 불안이 앞선다.

기침이 길어지면 폐 CT, 코 CT, 위내시경까지 권한다.

보험 없인 감당 못 할 비용이다.


** 동네병원 의사는 4만1988명으로 종합병원(2만316명)과

상급종합병원(2만236명)에서 일하는 의사를 합친 숫자와 비슷하다.

즉 의사 수는 비슷한데 의원급이 비급여 진료를 금액 기준 2배 이상 갖고간다.


다른 한 친구는 이어 말했다.

어머니가 무릎 통증으로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의사는 간단한 진찰 후 즉시 MRI를 권했고,

결과는 ‘경미한 연골 손상’이었다.

그런데도 고가의 주사치료와 물리치료를 한 달간 매주 받으라고 했다.

총비용은 300만원이 넘었고, 비급여 항목이 절반이었다.

친구는 실손보험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보험 없는 환자라면 어쩌겠는가?


2010년대 중반엔 갑상샘암 과잉 진단으로 환자가 폭증한 ‘가짜 유행’까지 있었다.

최근에는 백내장 수술이 유행병처럼 번졌었다. 과잉진료는 이제 일상이 됐다.

이 모든 게 실손보험의 덕이다.

실손보험은 과잉진료로, 과잉진료는 의사수입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국민들은 과잉진료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보험 없인 병원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서민들은 병원 문턱조차 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은 의료 시스템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건강보험 보조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과잉진료로 세금이 낭비되고, 서민들은 경제적 부담에 시달린다.

칼을 들지 않았을 뿐 강도나 다름없고,

때론 보이스피싱처럼 교묘하게 느껴진다.

의사들이 이런 행태를 위해 의대를 나온 건 아닐 것이다.


hippocra.jpg Pieter Pietersz Last Man의 Hippocrates와 Democritus Painting, 17세기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의대에 입학하거나 직업 의사로서 첫걸음을 내딛을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가슴에 새기며

자신도 그러한 의사의 길로 가고자 희망했을 것이다.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불법적이거나 해로운 행위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20세기 독일의 천재 슈바이처 박사는 세상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신념으로

30세의 나이에 의대교수직을 내려놓고 1913년 아프리카 가봉으로 들어가

196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술을 펼쳤다.

아인슈타인이 ‘이 초라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단 한 명의 위대한 인간’이라

표현할 만큼 슈바이처박사의 헌신적 인류봉사는

전 인류에게 끝없는 역사적 감동으로 남아있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히포크라테스와 슈바이처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눈곱만큼이라도 그들의 그림자가 의사분들에게서 보이길 바래 본다.



https://youtu.be/an0ra_z5f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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