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이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 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다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 손로원 작사
백설희의 노래 <봄날은 간다>는 영속적이지 않은 사랑의 상실과 허무를
서정적으로 담아내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청춘의 사랑이 황혼의 사랑으로 이어지며 회한에 젖게 하는
이 노래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오마주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는 주인공 개개인의 서사보다는
세대별 인물들이 겪는 사랑의 상실과 허무가 결국
한 인간이 덫 없는 세월 속에 겪는 서사로 느끼게 해준다.
영화에서 여주(이영애)가 이별을 말하자, 남주(유지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답한다.
풋풋하고 순진한 마음 생각이다.
"사랑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해본 적이 언제인가?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설문조사가 던진 질문이 묘하게 마음에 걸린다.
미혼남녀 56%가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남성과 여성의 시선이 다르다.
남성 66%는 '더 이상 설렘이 느껴지지 않아서'를,
여성 47%는 '감정이 항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어서'를 이유로 꼽았다.
반면 40.8%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희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과연 사랑에는 정말 유통기한이 있는 걸까?
과학은 냉정하게 답한다.
진화심리학자들과 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사랑의 정점은 약 3년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에서 VTA(복측피개부)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곳은 도파민을 분비하며 열정과 갈망을 관장하는데,
흥미롭게도 코카인에 반응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마약 중독자처럼 행동하는 이유다.
한 사람만 생각하고, 현실을 왜곡하며, 위험을 감수한다.
진화적으로 보면 매우 합리적이다.
3년은 아이를 낳고 그 생존이 어느 정도 확실해질 때까지 필요한 최소 시간이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의 연구에 따르면,
약 60개국에서 가장 많은 이혼이 발생하는 시기도 결혼 4년차다.
사랑의 유통기한 3년, 사용기한 4-5년이라는 공식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생물학적 한계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을까?
얼마전 대히트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사랑이라고 믿었던 관계가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인물들은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나는 둘 다 사랑한다"는 파렴치한 발언에 분노하는 한편,
우리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다행히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은 희망적인 답을 제시한다.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의 세 요소로 구성되며,
이것들이 균형을 이뤄야 지속된다는 것이다.
친밀감만 있으면 우정과 구분이 모호하다.
친밀감에 열정이 더해지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낭만적 사랑이 된다.
친밀감에 헌신이 결합되면 오래된 부부의 동반자적 사랑이다.
반면 친밀감 없이 열정과 헌신만 있으면 스토커나 사생팬처럼 일방적이고 위험한 사랑이 나타난다.
가장 이상적인 사랑은 친밀감을 바탕으로 열정과 헌신이 결합된 성숙한 사랑이다.
초기의 낭만적 사랑은 주로 열정과 친밀감에 기반하지만,
진정한 성숙한 사랑은 여기에 헌신이라는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
열정이 식기 전에 친밀감과 헌신을 쌓아
다시 열정으로 에너지를 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
친밀감, 열정, 헌신 중 어느 것이 부족한가?
단순히 설렘과 열정에만 의존한 사랑은 분명 유통기한이 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헌신적 사랑으로 발전시킨다면,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결국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한 질문의 핵심은 '어떤 사랑을 추구할 것인가'에 있다.
듀오 설문에서 40.8%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답한 것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었던 셈이다.
사랑은 변해야 성숙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영원에 가까워진다.
푸르른 정원처럼 사랑 역시 관계 안에 포함된 사람들이 함께 가꾸고 끊임없이 돌봐야 한다.
3년이라는 생물학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진정 인간다운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