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의 우정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카카오톡 알림창이 떴다.

진한 우정의 인사를 기대했지만 차가운 광고 메시지가 화면을 채운다.

이것이 요즘 젊은이들이 마주한 우정의 현실이다.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세상에 좋은 것을 모두 다 가졌더라도 친구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던

그 친구는 이제 어디에 있을까?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친구 관계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그들은 외로움보다 타인으로 인한 정서적 소모를 더 두려워한다.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쌓는 것이 오히려 더 편안하다고 말한다.

이는 나약함이 아니라 자기 보호의 본능이다.


사교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그들은 마치 무대에 선 배우처럼

자신을 연기해야 한다는 피로감을 호소한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어울리는 것은

이제 '사회성'이 아니라 '자기 배신'으로 느껴진다.

진정한 자신을 감추고 남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에 지친 것이다.


그들은 야망이 없거나 항상 피곤한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절실히 원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둘이 함께 가면 생각에 있어서나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더 강해진다"는

그 힘을 여전히 갈망하고 있다.


전통적인 우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형태가 변모했을 뿐이다.

과거의 우정이 물리적 만남과 끈끈한 유대감을 중시했다면,

현대의 우정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는 '적당한 거리'에서 피어난다.

매일 만나지 않아도,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그저 서로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관계를 추구한다.



친구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것은 우리를 더 외롭고 취약하게 만든다.

외로움은 고통스럽지만,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이 주는 위로와 힘은 그 어떤 고통보다 값지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젊은 사람들에게 친구는 서로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결국 친구는 인생의 필수품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만들어 가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자.

진정한 친구는 당신이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편안한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우정은 달라졌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진실한 연결을 갈망하고 있으며,

다만 그것을 찾는 방식이 조금 더 신중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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