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우정의 의미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시간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관계들까지도 다시 정의해나간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들이 삶의 거의 전부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함께 꿈을 꾸며 관포지교(管鮑之交)와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외치던 그 시간들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나이를 먹으니 그런 우정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관계는 유효기간이 있다.

삶의 궤적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친구 관계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젊었을 때는 아무리 성격이 다르더라도 함께 어울리는

재미만으로도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각자의 인생이 만들어내는 궤적이 너무나도 달라지고,

만나도 할 이야기가 고갈되어 침묵이 흐르는 시간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결국 억지로 만나는 자리는 서로에게 부담이 될 뿐이다.


은퇴를 하고나면 보통 주변의 친구는 오랜 고교동창 정도 남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친구에게 기대는 마음은 더 커지는 반면,

그 기대가 저버려질 때 받는 상처는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무관심한 반응을 받거나,

내가 믿고 전한 이야기가 가십거리로 변질되는 것을 발견할 때의 배신감은

젊었을 때의 다툼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우정만큼 부실한 가치는 없다는 것을 배우는 순간이기도 하다.



또한 나이를 먹으면 만남이 비교와 자존심의 장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누가 더 성공했는지,

누구 자녀가 더 좋은 성취를 했는지에 대한 암묵적인 경쟁은

만남을 휴식이 아닌 피곤한 일로 만들어버린다.

경제적 격차가 커지면서 대화 주제 자체가 달라지고,

서로의 삶을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어렸을 때는 푼돈을 모아 군것질하던 그 친구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만남이 점점 건강 이야기와

실망스러운 일상에 대한 불평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만나서 주로 병이나 세상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다 보면,

만남이 끝난 후에도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만남은 오히려 정신적 에너지를 고갈시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힘마저 앗아가버린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모두에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오히려 나이 들수록 소수의 진정한 친구들이 더욱 빛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생의 가을에는 관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해지고,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로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진정한 평화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하지 않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공부가 충분히 이루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생의 가을에는 가족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지고,

자신을 위한 시간이 더 값어치를 갖게 된다.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자연을 거닐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충족감을 줄 때가 많다.


친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계의 형태가 변하고 있는 것뿐이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관계도 그에 맞게 변화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 아닐까.


결국 나이를 먹으면 친구가 필요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관계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진정한 우정은 수많은 관계를 걸러내는 시간의 여과 속에서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인생의 가을은 우리에게 진정한 우정의 무게와

고독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르쳐주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wallpaperbetter.com_1920x1080 (5).jpg


매거진의 이전글요즘 젊은이들의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