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파리의 에펠탑 주변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루브르 박물관이 파업으로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한때 '영광의 30년'을 구가하며 세계가 부러워하던 복지 모델의 나라가,
지금은 매년 반복되는 총파업과 거리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의 비극은 선의로 시작되었다.
2차 대전 후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면서,
그들이 꿈꾼 것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사회였다.
실업수당, 의료보험, 연금제도... 이 모든 것들이 한때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었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국민들도 복지를 줄이는 데 동의할 것"이라는
낙관적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68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에는 '길거리에서 권리를 쟁취한다'는 문화가 뿌리내렸다.
파업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고,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중독과 같았다. 한번 주어진 복지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새로운 위기가 올 때마다 더 많은 복지가 추가되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우리 역시 매번 선거철이 되면 각종 복지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번 시행된 제도는 축소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프랑스만큼 거대한 시위나 총파업 문화가 자리잡지는 않았지만,
복지 확대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는 단 한 번도 재정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50년간 계속된 적자의 역사다.
GDP 대비 115%에 달하는 국가 부채는 이제 연간 이자만으로도 국방예산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거리에서는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구호가 울려 퍼지고,
시위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한국의 강경 노조가 틈만나면 거리로 뛰쳐 나오는 모습이 연상된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 시도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이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패배했지만,
어쩌면 역사적으로는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대처처럼 말이다.
당시엔 미움받았지만, 결국 영국을 위기에서 구해낸 철의 여인처럼.
지금 프랑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파격적인 긴축이냐, 아니면 IMF 구제금융을 통한 강제 긴축이냐.
프랑스 국민들은 아직도 제3의 길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수학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 앞에서,
우리 역시 복지와 재정 건전성 사이의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다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일찍 뼈아픈 교훈을
얻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때의 충격이 있었기에 한국은 아직 프랑스만큼 깊은 늪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연금 고갈과 복지 확대 요구가 커지는 지금,
우리도 프랑스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기를 극복한다면 프랑스는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
인프라도 좋고, 기술력도 있으며, 여전히 유럽연합의 중심 국가다.
문제는 과도한 복지라는 구조적 모순뿐이다.
하지만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분열될 위험도 크다.
2025년은 프랑스에게 운명의 해가 될 것이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그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달콤한 환상 속에서 파국을 향해 달려갈까.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