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공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주절주절

by 제임스

15년 전,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해외 기업 사장단 회의에 참석했을 때,

행안부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과 2차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가졌다.

참고로 대사관에는 재정경제부 문화관광부등 16개 부서에서 파견 나와 있다.

자연스레 어디 사느냐는 질문이 오갔다.

나는 교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산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교민들과 많이 떨어진 곳에 산다는 것이다.

이유를 묻자 "교민들과 섞여 있으면 이런저런 민원 때문에 힘들다"며

"대사관 지침"이라고 했다.


그 순간, 기가 막혔다. 해외 교민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교민을 회피하다니.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납치·감금된 한국인 피해자 가족에게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가능하시면 자력 탈출을 권유한다"는

문구가 담긴 신고 가이드라인을 배포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취업사기로 범죄조직에 끌려간 20대 아들을 구하려던

손영숙 씨는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이 문서를 건네받았다.

"갇힌 건물 사진을 찍어 보내야 한다는 말에 손이 떨렸다"는

그녀의 증언은 참담하다.



문서에는 더 가혹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족이 신고했는데 피해자가 '괜찮다'고

하면 허위신고로 구속될 수 있다"는 협박성 문구부터,

신고 시 건물 사진·층수·방 번호·여권 사본·현재 위치를 모두 제출해야 하며

하나라도 빠지면 경찰 출동이 불가능하다는 지침까지.


심지어 "대사관은 현지 사법기관의 조사에 관여할 수 없으며,

구조 차량 파견은 불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외교부는 이를 "신고 편의를 돕기 위한 자료"라고 해명했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책임 회피용 설명일 뿐"이라고 반발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감금 신고 건수는

2021년 4건에서 2024년 221건으로 급증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대사관은 현지 경찰 신고 방법만 안내할 뿐,

피해자 보호나 긴급 지원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해외 공관 외교관들의 각종 비리와 성추문은 국가적 망신이 되어왔다.

2016년 칠레 대사관 소속 외교관은 미성년자를 성추행해

현지 방송의 함정 취재에 적나라하게 포착되었고, 파면 처분을 받았다.

2017년 에티오피아 주재 외교관은 계약직 여성 직원을 성폭행하여 파면되었고,

같은 대사관 소속 고위급 외교관의 성추행 의혹도 불거졌다.

2017년 뉴질랜드 주재 부대사는 직원을 세 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나 한국으로 귀국했고,

이 사건은 양국 정상 통화에서 직접 거론되는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2018년에는 주파키스탄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부하 직원을 성추행했으나

정직 3개월이라는 솜방방이 처벌에 그쳤다.



외교부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기소가 무마되거나,

정직에 그치는 경우가 반복되었다.

신고받고 처리가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국민이 주는 세금은 또박또박 받아 챙긴다.

이것이야말로 죄악이 아니고 무엇인가.


해외 공관은 국민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정작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자력으로 탈출하라"고 하고,

민원이 귀찮다고 교민을 회피하며,

외교관 자신들은 성추문과 비리로 나라 망신을 시킨다.


이런 현실 속에서 중앙정부는 해외 공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 하나하나가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이제는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외교 공관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해외에서 위기에 처한 국민을 외면하는 공관이라면, 존재 이유를 의심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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