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그 역설의 초상

주절주절

by 제임스

이번 추석 연휴는 내내 뉴스를 도배했던 한 인물의 소식으로 시끄러웠다.

그 이름은 이진숙이다.

언론인 출신이지만, 언론 내부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이토록 극과 극으로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 드물다.


그녀의 지난 몇 년을 수놓은 키워드만으로도 그 파란만장함이 증명된다.

방통위원장, 탄핵 의결, 직무 복귀, 감사원 감사, 경찰 수사,

국무회의 배제, 자동 면직, 체포, 석방이 그것이다.


추석을 뜨겁게 달군 그 체포 사건은,

마치 그녀 인생이라는 긴 드라마의 한 차례 강렬한 클라이맥스와 같았다.

이진숙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흔히 '이진숙 사태'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MBC, 방통위, 정권이

얽히고 설킨 긴 역사의 한 복판에 자리한다.

그녀는 진정 보수의 여전사인가,

아니면 오직 자신의 정치적 논리만을 관철하는 인물인가.


전사의 탄생

그녀의 출발은 누구도 인정하는 '전사'의 모습이었다.

이진숙 기자의 1991년 걸프전 보도는 아직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첫 여성 종군기자인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동 전문기자다.

이라크전쟁 취재는 그에게는 10년 공부의 결실이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이라크 무스탄스리아대학,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학대학원에서 중동지역의 언어와 국제정세 등을 공부했다.

고지식할 정도로 철저한 그의 ‘현장제일주의’는 여러번 ‘물의’를 빚었다.

걸프전과 이라크전 모두 그는 회사쪽의 잇단 철수 명령을 어기고

혼자 전장터에 들어가 ‘바그다드 함락’ 등의 기사를 특종 보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MBC 노조와 대립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 자신이 1992년 강경대 사건(명지대 학생으로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당시 노조 파업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때 함께 단식하며 버텼던 동지는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였다.

인생의 극적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인생이 크게 선회한 것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였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쇠고기 보도가 정권에 치명타를 입히자,

정권은 김재철 사장을 MBC에 보내어 노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김재철 사장이 선택한 '등용' 인재가 바로 이진숙이었다.

정책협력부장에서 홍보본부장까지 발탁되면서,

그녀는 노조의 눈엔 '편의점'이 되어 버렸다.

결국 MBC 기자회는 그녀를 사상 초유로 제명했다.

한때의 동지에서 가장 단호한 적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정치의 수렁

정치의 세계로 들어선 그녀의 2막은 순탄치 않았다.

자유한국당 입당 후 대구에서의 국회의원 도전,

대선 캠프 합류와 이탈, 대구시장 선거 출마까지,

모든 도전이 거센 파도를 맞이했다.


그리고 2024년, 인생 3막이자 가장 거친 폭풍의 장이 열렸다.

방송통신위원장으로의 취임이었다.

윤석열 정부 아래서 한상혁, 이동관, 김홍일 전임자들이 차례로 퇴장한 후,

그 자리에 그녀가 앉았다.

민주당에게는 피하고 피했던 '최악의 인선'이었다.

취임식도 없이 과천 청사로 직행해 보수 성향의 이사들을 선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야당은 취임 이틀 만에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2인 체제로 한 의결은 위법'이라는 명분이었다.


그 후, 그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는 '직무 정지' 상태에 빠졌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새로운 정권 아래서 그녀를 향한 공세는 본격화되었다.

국무회의에서의 공개적 갈등, 배제,

그리고 감사원과 경찰의 수사가 이어졌다.

직무 정지 기간 중 보수 유튜브에 출연해 한 발언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대전 MBC 사장 시절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은 '빵진숙' 프레임으로 씌워졌다.


결정타는 '이진숙 축출법'이었다.

방통위 조직 개편을 명목으로,

유일한 정무직 공무원이었던 그녀의 자리를 없애버린 것이다.

10월 1일, 그녀는 자동 면직되었고,

바로 다음 날 산책길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수갑이 채워지는 모습과 그녀의 외침!

“이재명이 시켰습니까? 정청래가 시켰습니까? 아니면 개딸들이 시켰습니까?”

그것은 추석 연휴 내내 되풀어 방영되는 충격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비록 체포 적부심에서 '석방'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한 인물과 한 정권의 싸움이었음을 모두가 목격했다.



끝나지 않은 질문

이진숙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상처 두 곳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하나는 '정권과 공영방송의 기나긴 전쟁'이다.

<PD수첩>에서 시작된 MBC와 보수 정권의 갈등은,

문재인 정권 때는 노조와 사측이 한 방향을 보다가,

윤석열 정권에선 사측을 교체하려는 시도로,

그리고 다시 이재명 정권에선 '방송 3법'으로 이어졌다.

이진숙은 그 한가운데에서, 때로는 공격자로, 때로는 희생자로,

그 싸움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다른 하나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 기관'에 대한 깊은 불신이다.

검찰이 '정치 검찰'이라 비판받아 폐지되는 이 시점에,

경찰의 이번 섬뜩한 움직임은 '정치 경찰'의 탄생을 우려하게 만든다.

한 보수 인사의 비판처럼,

"권력 집단의 지시를 받들어 추석 연휴 전날 그만두자마자 바로 다음 날 체포해 갔다"는

의혹은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진숙은 결국, 한국 사회의 거대한 균열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녀의 편에서 보면,

목숨을 걸었던 저널리스트의 정신으로 마지막까지 싸우는 '보수의 여전사'이다.

그녀의 반대편에서 보면,

권력의 논리에 따라 변모하며 자신만의 전쟁을 수행하는 '파란만장한 정치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를 지나며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과연 언론의 자유와 공정성은 어디에,

그리고 그를 위협하는 권력의 손길은 어디에서 막아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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