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금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어릴 적 기억 속에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고

무당집 골목길을 걸었던 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엄마는 내 작은 손을 꼭 쥐고 있었고,

나는 왜 이런 곳에 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엄마를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뿐이다.

무당집의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

향 냄새와 함께 울려 퍼지는 방울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무당의 모습들이

나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점술을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점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작 점괘대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점술에 빠져 자신의 의지와 판단력을 포기하고,

타인의 말에 의존해 중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다.

그래서 나에게 점술은 혹세무민하는 사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손금 하나로 사람의 운명을 재단하고,

미래를 예언한다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진다.


요즘 유행하는 실시간 점사 상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술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려움에 부딪친 사람들에게는 때로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점술사들이 카운슬러 역할을 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근거가 과학적이지 않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면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 집 여성들의 점술에 대한 태도는 제각각이다.

아내는 점을 보러 다니지 않는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성격 탓일까,

그런 것들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서른 중반의 딸은 자주 점을 보러 다니는 모양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업, 결혼, 육아 등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확신을 얻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 딸에게 점 보러 가지 말라고 타이르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어느 날 딸이 들뜬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손금을 보았다며 자신이 성공하는 손금을 가지고 있다고 좋아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그때 딸이 내 손을 잡더니 아빠 손금도 보겠다고 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딸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아빠, 재벌 손금이에요!"라고 외쳤다.


삼성그룹 전회장 이건희 손금(M자 손금)


딸은 곧 할말을 잃었다.

아빠가 재벌이 아니라는 현실 때문이었다.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과 손금 결과 사이의 괴리감에 당황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M자 손금이죠? ㅎㅎ


"딸아, 아빠는 정말 재벌이야."


딸의 의아한 표정을 보며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나에게는 착하고 현명한 아내가 있다.

35년을 넘게 함께 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재산인가.


그리고 건강하고 성실한 자식들이 있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가족을 사랑하고

효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억지로 하기 싫은 일에 매달려 지낸 적은 없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도 원하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설계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나만의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재벌과는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부란 숫자로 표현되는 재산의 크기가 아니라

삶의 만족도에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건강한 몸과 마음,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만족감,

이런 것들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짜 재산이다.


손금은 단순한 손바닥의 선에 불과하다.

그 선들이 미래를 예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선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 손금이 정말 재벌 손금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내 삶에 만족하며,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떤 점괘보다도 확실한 나만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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