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기원전 3세기 중국 대륙의 전국시대와 21세기 한반도의 정치 현실 사이에는
2천여 년의 시간적 간극이 있지만,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적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진시황이 피비린내 나는 분열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이사, 왕전, 정국이라는 세 명신의 역할과
그들이 펼친 전략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현대 한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사가 제시한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은
오늘날 한국의 외교 전략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진나라가 멀리 있는 제나라, 연나라와 동맹을 맺으면서
인근의 위나라, 한나라를 차례로 공략한 것처럼,
현대 한국도 미국, 일본과의 동맹을 통해 북한 문제에 대응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특히 이사의 '객경정책(客卿政策)'은
현재 한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인재 유치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
진나라가 타국 출신 인재들을 적극 등용하여 국력을 강화한 것처럼,
한국도 개방적 인재정책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지역감정과 학연, 혈연 중심의 인사가
여전히 강고하여 진정한 능력 중심의 인재등용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왕전의 군사 전략에서는 현대적 의미의 '전략적 인내'를 엿볼 수 있다.
그가 60만 대군을 요구하며 초나라와 1년여 대치한 것은 성급한 결정보다
충분한 준비를 중시한 신중함의 발로였다.
이는 현재 한국이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급작스러운 군사적 해결책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며
인내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 정권이 5년마다 바뀌면서 일관된 대북정책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진나라가 수십 년에 걸쳐 일관된 통일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국의 수리사업은 현대 한국의 경제개발 전략과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정국거(鄭國渠) 건설이 관중 평원을 옥토로 만들어 진나라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한 것처럼,
한국도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같은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통해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정국이 원래 적국 출신이었음에도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중용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여전히 출신 지역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른 배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제도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진나라가 상앙의 변법을 통해 확립한 엄격한 법치주의와 능력 중심의 관료제는
개인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반면 현재 한국 정치는 여전히 지역주의, 세대 갈등, 이념 대립에 매몰되어
국가적 차원의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정감사나 정치적 공방에서 보듯이,
정책의 실효성보다는 정치적 득실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진시황 시대의 세 명신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전문성에 기반한 역할 분담과 협력이다.
이사는 전략과 외교를, 왕전은 군사를, 정국은 경제를 담당하며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다.
현대 한국 정치에도 이러한 전문성 중심의 거버넌스가 절실하다.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장기적 비전을 갖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결국 진시황의 천하통일이 주는 교훈은
분열과 갈등을 넘어선 통합의 리더십에 있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남북 분단, 사회적 갈등, 경제적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나라의 세 명신이 보여준 전략적 사고, 전문성,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적 차원의 장기 비전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