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며칠 전 우리 집 멍돌이를 산책시키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한 50대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그녀는 카트에 소주 2박스를 싣고 있었다.
손님이 많이 오시나 보다 싶어
"손님 많이 오시나 보죠?"라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술고래라 남편이 마실 술이란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걱정이예요. 너무 마셔서... 말려도 소용이 없네요."
체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그저 분위기로 마시는 정도다.
그래서인지 주당들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은 술이 좋아서 마신다고 한다.
그다음 날도 숙취 없이 멀쩡하게 출근한다.
퇴근 시간이면 또 술타령이다.
그 체력과 정신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땐 그것이 너무 부러웠었다.
예전에는 술 잘 마시면 사내대장부라는 호칭이 붙었고, 출세도 빨랐다.
특히 판검사, 정치인 등은 술자리로 운명을 가르기도 했다.
영업사원이면 무조건 주당이 유리했다.
술상무라는 보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 세상에 술친구가 제일 무섭다는 말도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편들어 주는 친구,
그것이 바로 술친구다.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서 세 여자가 엄청 술을 마셔댔다.
재미있게 봤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렇게 마셨다간 죽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장이 아니었다.
오늘 뉴스에서 매일 13명이 술로 인해 사망한다는 보도를 봤다.
지난해 알코올 관련 사망자가 4천823명,
전년보다 361명이나 늘었다고 한다.
50대 사망률이 가장 높았고, 남성이 여성보다 5배나 많았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여성의 알코올 사망률 증가세였다.
특히 30대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이 12.6%로 9년 전보다 6.4%포인트나 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아주머니의 체념한 표정이 자꾸만 떠오른다.
소주 2박스를 카트에 실은 채 "말려도 소용없다"고 했던 그 목소리.
그녀의 남편은 어쩌면 하루 평균 13.2명의 사망자 통계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술은 문화다, 술은 인생이다, 술은 예술이다.
우리는 그렇게 술을 포장해 왔다.
하지만 그 포장 뒤에는 매일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지켜보며 속앓이 하는 가족들이 있다.
술꾼이라는 말이 더 이상 호탕함이나 남성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걱정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언제쯤 술잔 대신 건강을 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