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어제 밤,
아파트 정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누군가의 술주정을 들었다.
깊은 밤, 정적을 깨는 그 날것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문득 놀라웠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20-30년 전만 해도 한국사회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내는 '술 권하는 사회'이었다.
술로 인한 온갖 문제가 발생해도
"술이 문제지, 사람이 무슨 문제냐"며 용인하던 시대였다.
법정에서조차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해주었고,
음주운전도 "그까짓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때였다.
술주정은 천태만상이다.
술만 먹으면 우는 사람이 있다.
어깨에 머리를 묻고 훌쩍거린다.
옷을 벗는 사람은 2차만 가면 상의를 훌훌 벗어던지며 "더워, 더워!" 외친다.
새벽에 갑자기 매운 라면을 찾는 사람,
술만 취하면 남들과 시비를 거는 사람,
무작정 옛 연인이나 뜸한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다.
평소엔 과묵하다가 술만 마시면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사람,
반대로 술 한 잔에 바로 골아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며 강연가로 돌변하는 사람이다.
같은 무용담을 세 번, 네 번 반복하며 "내가 그때 말이야..."로 시작하는 그 끝없는 서사.
이런 사람들과 술자리를 한다면 과연 즐겁겠는가?
대학 시절, 한 친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술만 먹으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웃어넘기고, 두 번째엔 '또 시작이구나' 했고, 세 번째엔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결국 못 참은 다른 친구가 폭행을 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날 이후 그 친구는 싹 고쳤다.
주정에는 매가 약이라는 속설을 믿게 된 순간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둘째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가 물 마시듯 하며 마시는 저 사람들은 뭐냐"고 했다.
원샷 문화를 꼬집으며
"입술이나 혀를 적시지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고 절규했다.
다산은 술로 인한 병폐를 낱낱이 열거하며
"무릇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내는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로 말미암아 비롯된다"고 경계했다.
술의 정취는 입술을 적시는 데 있으며, 살짝 취하는 데 있다고 했다.
쌍팔년도, 내가 모 그룹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인사과장이 신입사원 환영회를 연다며 자리를 마련했다.
2차로 간 곳에서 그는 자신의 구두를 벗어 술을 따라 주며 "의리를 시험한다"고 했다.
원샷을 다그쳤다.
마실 수밖에 없는 운명을 한탄하며 그 구두잔을 들이켰고,
화장실로 달려가서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이 절로 나왔다.
권력의 위계가 술잔에 담겨 강요되던 시대의 풍경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오죽했으랴.
김종직은 밀양향교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향교가 습속(習俗)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잔칫날 명륜당에 기생의 풍악이 울리고,
선비들이 둘러앉아 음란한 노래와 춤으로 밤낮을 지새운다는 것이다.
스승조차 입을 다물고 술주정을 하며 옷을 벗는 자도 있다고 했다.
1397년 최선과 최굉은 기생들을 불러 풍악을 울리며
술을 마시다 남의 집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는 술주정을 벌였다.
1447년에는 양녕대군의 아들 이혜가 술주정으로 사람을 죽여 유배형에 처해졌다.
1783년에는 충청도 아산의 광대 박삼징이 술자리 다툼 끝에
친구의 불알을 발로 차 죽이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1784년에는 친구들끼리 "청주를 시키느냐 탁주를 시키느냐"를 놓고 말다툼을 벌이다
칼부림으로 번져 한 사람이 죽었다.
정조는 "살인의 원인은 바로 술이요, 싸움이요, 실수"라며 용의자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연예인 줄리엔 강은 대낮에 속옷 차림으로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다가 경찰에 연행된 일화가 있다.
술을 거의 못 하는데 지인들이 권해 어쩔 수 없이 마셨다가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다행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거리 청소라는 모범적인 행동이었기에
오히려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한다. 술주정도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학적으로 술주정은 엄연히 질병이다.
술을 마실 때마다 주사가 나타나면 성격 형성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높다.
알코올이 전두엽 기능을 마비시키고,
과음이 지속되면 전두엽 기능 자체가 떨어져 음주량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 가족의 90%가 괴로움을 겪지만,
절반 이상이 5년 이상 지나서야 병원을 찾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많은 사람이 알코올 의존증을 질병이 아닌 단순한 나쁜 술버릇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환자의 폭언과 폭력, 가정불화 등 심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 원래 그래" 하며 넘기다가 10년 이상 고통받는 경우도 26.8%나 된다.
알코올 의존증은 조기 치료할수록 회복률이 높지만,
방치하면 치료 성공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가족의 사랑만으로는 벗어나기 힘들며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은 금주를 다짐한 남효온에게 이렇게 답했다.
"공자는 술에 일정한 양이 없었으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
술을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니라 '필름'이 끊기고 주정을 부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색도 시에서 "태백이 부른 노래가 천고를 비추고 있지만,
천재가 아닌데 흉내 내면 술주정만 부리리다"고 했다.
이태백처럼 천재도 아니면서 풍류를 따라하면 술주정만 부릴 뿐이니,
견디지도 못할 술은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다행히 시대는 변했다. 더 이상 술을 강요하지 않고, 음주운전은 엄중히 처벌받는다.
하지만 어제 밤 아파트 정원에서 들려온 그 울부짖음은 아직도 우리 곁에 술주정의 그림자가
남아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술자리가 즐거운 이유는 술 때문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 때문이다.
술주정으로 그 즐거움을 망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다산의 말처럼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는 것을,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