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재산, 겸손한 부자

재미난 이야기

by 제임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지도자가 있다.

권위로 밀어붙이는 지도자도 있고, 협력으로 이끄는 지도자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가 있다.


어느 날, 한 장례식장에 초라하고 겸손한 모습의 한 사람이 나타났다.

고인은 삼성전자 청소 아주머니였다.

평소 묵묵히 일만 해서 대부분의 직원들은 누구인지도 몰랐고,

장례식은 조촐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홀몸으로 걸어와 조의를 표했다.

아무도 몰랐던 청소 아주머니, 그분 역시 그에게는 소중한 직원이자 가족이었다.


이것은 쇼가 아니다. 타고난 성품이다.


고 이건희 회장 생전에 가족사진


1968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이재용은, 우리나라의 평범한 교육 과정을 밟았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그는 학적부에 아버지 직업을 '회사원'이라고 적었다.

그저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고 싶었던 것일까.


이재용 회장이 서울대 재학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는 평범한 서민이었으며,

이재용 회장은 대학 시절 그 친구의 자취방을 밥 먹듯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 친구가 공직자의 꿈을 안고 고시를 준비했지만 매번 낙방하며 힘든 삶을 숨겼을 때,

이재용 회장은 재벌로서 도와주기보다 매번 찾아가 라면을 끓여주며 위로를 건넸다.

결국 친구가 취업에 합격하자,

이재용 회장은 가장 먼저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에 친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친구는 그제야 이건희 회장과 마주치며 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재용 회장은 절친에게 물질적 도움은 한 번도 주지 않았지만,

항상 진심으로 응원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서초구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한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같은 과 선배들과 시위에 참여해

최루탄 맛을 경험하기도 했다.

과 MT나 동기들의 여행길에도 동행했는데,

형편이 어려운 동기의 등록금을 대신 내주고,

1박 2일 설악산 산행을 갈 때는 친구들이 듣도 보도 못한 고급 초콜릿을 가져오기도 했다.


대학 재학 시절 흠모하는 여학생과 연애하다 6개월 만에 차이기도 했던 그는,

사랑에서도 평범한 청년이었다.

이재용회장을 찬여인은 아마도 당시에는 삼성그룹의 후계자인것을 몰랐을 것이다.



MT에서 동기들과 토론하는 걸 즐겼는데,

이때 자주 이야기를 나눴던 가까운 친구는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했다. 격렬한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친구였는데

자기주장을 적극적으로 폈고 남의 이야기도 잘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친구들은 그를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으로 기억했다.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에 취업했다가 학업을 위해 일을 쉬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MBA를 취득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일본과 미국 내 정재계 인맥 네트워크를 탄탄히 쌓아갔다.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은 졸업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부사장이 된 후 연말 모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자신의 지위가 친구들에게 부담이 될까 염려했던 것일까.


이재용은 재벌 3세답지 않게 소탈하고 겸손하다.

직원들의 이메일에 직접 답변할 정도로 세심한 그는,

전무 시절 팀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직접 폭탄주를 만들어 주며 친근하게 소통했다고 한다.

화끈한 주량으로 열 잔을 마실 정도로 팀원들과의 유대를 중시했던 그의 모습은,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온 성품의 연장선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임직원들과 간담회에서 직원의 부탁으로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직원들과의 간담회는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무대다.

어느 날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재용 회장은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경청하고,

도전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조직문화 개선 방안 등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간담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특히 한 직원이 "출근 전 아내에게 이재용 부회장과 단독 사진을 찍어오겠다고 큰소리쳤다"며

사진을 요청하자, 이 회장은 해당 직원의 아내에게 직접 영상통화를 했다.

그는 일반 직원들이 요청하면 언제든지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 회장이 이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인성이고 성품이다.


그의 일상은 더욱 흥미롭다.

콩국수를 특히 좋아하는 그는 전무 시절 삼성생명 뒤에 있는

진주회관이라는 음식점을 자주 찾았다.

너무나 좋아해서 직원 회식 장소로 이곳을 선택하기도 했으며,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직접 배달도 시켜 드렸다.

가족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그 작은 손길에서,

이병철 할아버지의 "경영보다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전에는 그의 더욱 친근한 모습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위로 간담회가 끝난 후 부산 시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맛있게 떡볶이를 먹던 이재용 회장은 대뜸 상인을 향해

"어묵 국물 좀 먹을 수 있겠냐"며 물어왔다.

그렇게 어묵 국물을 받아 들곤 "아 좋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네티즌들은 "저걸 아는 게 너무 신기하다", "웃수저다", "스타성은 타고나야 한다"며

그의 행보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속 부산 시민들은 이재용 회장을 보자

"이재용! 이재용!"이라고 외치며 선거유세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의 환영을 보냈다.

시민들이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자 이재용 회장은 화답하듯 시민 한 명, 한 명씩 손을 잡아줬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회장은 입에 손가락을 대는 '쉿' 동작을 하며

"조용히 해주세요", "이름…이름 부르지 말아 주세요"라고 웃으면서 부탁했다.

옆에 있는 대통령이 민망할까봐 '쉿'을 외친 그의 매너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B737 2대와 BD700 1대 등 전용기 3대를 대한항공에 매각. 전용헬기 6대는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항공에 매각하고 삼성병원 의료용 헬기만 남겼다.


세계 부자 중 유일하게 전용기가 없는 한국인, 그것이 바로 이재용이다.

경영권을 쥐자마자 그는 아버지 세대의 전용기와 헬기를 모두 팔아버렸다.

격납고 비용, 세금, 인건비를 포함한 연간 수백억의 유지비가

이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국산차만 애용하고, 두 번이나 명의가 바뀐 중고차를 타고 다니며,

찢어져서 너덜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출장을 간다.

또한 국내 기업 총수들의 연봉이 수백억에 달하는 가운데,

이재용 회장이 8년째 연봉을 받지 않고 있다.

이유는해외처럼 상징적으로 연봉을 안 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책임을 지기 위해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들이 시민권 포기하고 군입대 등등...

직원들은 그의 이러한 모습에 충성심이 절로 생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전 회장 생전에 주재하는 모든 회의에 배석했지만,

그는 늘 끝자리에 앉았다.

그룹 임원들과 가끔 식사를 같이했지만, 골프나 등산을 함께한 적은 없다.

그는 늘 혼자 등산을 해왔다.

약한 모습, 흐트러진 모습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특검에서 22시간 동안 조사를 받는 동안,

그는 기지개를 켜거나 트림하거나 다리를 꼬거나 하품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

특검 사무실에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하버드에서 공부한 엘리트이지만, 법정에 서야 했고, 감옥에도 가야 했다.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는 "국민들에게 많은 우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려운 시기를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깊이와 무게감,

그것이 바로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은 故 이건희 선대회장 유족이 2021년 3000억원을 기부하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쪽방촌 방문 이후,

그는 무려 20년간 회사 몰래 무료 의료 시설인 요셉원에 기부해왔다.

코로나19 때는 전통시장과 화훼 농가를 지원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꿈을 주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그는,

기업의 이익만 쫓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마음을 쓰는 리더다.


산업과 기술 발전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다르다.

AI,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20년, 30년 후 다음 세대 먹거리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장의 눈앞만 보는 정치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시각이다.

그는 진정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준비하는 리더다.

주변의 사소한 것에도 귀를 기울이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새로운 리더십의 가능성을 본다.

네티즌들은 그를 "유일하게 시민과 소통하는 총수"라며 극찬한다.

그의 리더십은 조용하지만 강하고, 소탈하지만 결단력 있다.



만약 이재용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정치의 풍경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겸손하지만 강한, 원칙이 있고 미래를 보는, 그런 지도자가 필요한 때다.

권위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협력으로 이끄는 지도자,

청소 아주머니의 장례식에도 홀몸으로 걸어가고,

떡볶이를 먹으며 "어묵 국물 좀 먹을 수 있겠냐"고 물을 수 있는 그런 지도자 말이다.

직원의 아내에게 직접 영상통화를 걸어주고,

언제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그런 지도자 말이다.


그는 분명 그 자리를 떳떳이 감당해낼 인물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그의 리더십을 주목할 때가 왔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그 리더십,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정치 문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20251031_094847.jpg 30일, 깐부치킨’에서 치맥을 먹는 세게의 부자들. 골든벨은 젠슨황이 울리고 계산은 이재용 회장이 했다. "젠슨 황 앉은 자리, 기 좀 받자"…치맥회동 가게 '성지순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