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욕망이 얼어붙은 산

재미난 이야기

by 제임스

해발 8,848미터.

에베레스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한때 이 산은 최정상급 전문 산악인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성역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최첨단 장비의 발달과 5천만 원이면 고용할 수 있는 셰르파 가이드 덕분에,

이제 일반인들도 에베레스트 정상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꿈의 대가는 종종 목숨으로 치러진다.


20251021_184444.jpg 에베레스트산


동문들이 이 죽음의 산을 도전한다고 나섰다.

그들은 아마추어 등반가들이다.

선후배들이 함께 간다고 한다.

그 중엔 나와 동갑짜리 동기도 있다.

무모한 것인지, 자랑스러운 것인지...


에베레스트 등반의 마지막 관문은 해발 8,000미터에 위치한 캠프4이다.

여기서 정상까지 남은 800미터.

이 짧은 거리가 '데스 존(Death Zone)',

즉 죽음의 구역으로 불린다.


영하 30도의 혹한과 사람을 날려버릴 듯한 강풍, 그

리고 언제든 발을 헛디딜 수 있는 추락의 위험.

등반객들은 이 지옥 같은 환경을 20시간 동안 견디며

정상을 찍고 다시 내려와야 한다.


이 구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1953년 이후 에베레스트에서 숨진 사람의 수는 300여명으로 알려졌으며,

150명의 시신은 아직도 동결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죽음의 원인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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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온증, 고산병, 추락, 산소 부족.

그런데 그중 가장 황당한 이유가 있다.

바로 5천만 원의 '본전 찾기' 심리다.

엄청난 돈을 투자한 만큼 무리해서라도 정상을 찍고 싶은 욕망.

이 집착이 수많은 일반인 등반가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하나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


더욱 섬뜩한 것은 이 산에 남겨진 시신들이다.

시신 회수에 1,500만 원, 현지 화장 등 처리에 다시 1,500만 원이 드는 데다,

데스 존의 극한 환경에서는 시신을 옮기는 것 자체가 회수팀의 목숨까지 위협한다.

등산로에서 시체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최대 9천만 원 상당의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시체 수습 중 사고 위험성 등의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신은 그대로 방치된다.

유가족 입장에서도 산을 사랑했던 이가 에베레스트에 영원히 잠드는 것을

더 나은 선택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얼어붙은 시신들은 기묘한 역할을 하게 된다.

바로 살아있는 등반객들의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은 설원에 널부러진 시신으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곤 한다.

때문에 시신마다 이름이 있다.


다운로드.jpg 그린 부츠는 산에서 목숨을 잃은 300명 중 한 명인 이 등산가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시신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유명한 시신은 '그린 부츠(Green Boots)'다.

1996년 이 산을 오르다가 실종된 인도인 등산가 체왕 팔조르의 시신으로 추정되며,

연두색 형광 장화를 신고 있어 이러한 별명이 붙었다.

해발 8,640미터 지점의 작은 동굴에 웅크린 채 얼어붙은 그의 모습은,

등반객들에게 "당신은 지금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서워해야 할 시신 앞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아이러니.

그것이 에베레스트의 현실이다.


2006년에는 그린 부츠 동굴에서 영국인 등반객 데이비드 샤프가 사망했다.

당시 다수의 등반객이 이곳을 지나갔으나 죽어가고 있는 샤프를 미처 보지 못하거나,

그린 부츠와 혼동하는 등으로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살아있는 사람조차 시신으로 착각당하는 곳.

그곳이 에베레스트다.


북동쪽의 3개 봉우리를 넘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한데,

여러 등산가들이 이 루트를 도전했다가 죽는 바람에

시체 밀집 지역이 되어버려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많다고 해서

우스갯소리로 '무지개 계곡(Rainbow Valley)'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20251021_185407.jpg 무지개 계곡(Rainbow Valley)


죽음으로 수놓인 계곡.

그 위를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안고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에베레스트는 인간의 욕망과 한계가 맞부딪치는 곳이다.

세계 최고봉에 오르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과,

투자한 돈이 아까워 무리하는 어리석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얼어붙어 이정표가 되고,

새로운 도전자들은 그 시신을 딛고 또다시 정상을 향해 오른다.

에베레스트는 아름답지만 잔인하고, 숭고하지만 비극적이다.

그리고 그 산은 지금도 묵묵히, 다음 희생자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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