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바꾼 가짜뉴스

재미난 이야기

by 제임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단 하나의 기사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외상회의에 논의 된 조선 독립 문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삼팔선 분할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신탁통치 오보사건 기사


단순한 오보였을까?

아니면 치밀하게 기획된 가짜 뉴스였을까?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이 기사는

역사학자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악의 오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진실은 정반대였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국은 10년간의 신탁통치를 제안했고,

소련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를 비롯한 조선일보, 민중일보, 중앙신문 등 주요 언론들은

이를 거꾸로 보도했다.

팩트체크 없이 합동통신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 쓴 것이다.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이 가짜 뉴스의 진원지다.

최초의 왜곡 기사는 미군 기관지인 '태평양 성조기'에 실렸다.

그것도 '날조 전문가'로 유명했던 랄프 헤인젠 기자가 작성한 것이었다.

미 군정이 언론사 기사를 철저히 검열하던 시절,

이 거짓 기사가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통과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보 조작을 통한 공작 정치의 냄새가 짙다.

소련의 격렬한 반발을 부를 게 뻔함에도 허위 보도를 묵인하며

반탁운동을 '반소·반공'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군정청 공보부 보고서는 출처를 합동통신사로 돌리며

자신들의 관여를 은폐하려 했다.


신탁통치 절대반대 시위


이 하나의 거짓말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일제 식민지에서 막 해방된 국민들은 '신탁통치'를 식민지 지배의 연장으로 받아들였다.

동아일보의 보도 이후 좌우 이념 대립은 격화되었고,

우파는 즉시 독립을 외치며 대중의 정서를 자극했다.

좌파도 처음엔 반대했다가 내용을 확인한 후 찬성으로 돌아섰지만,

이미 '친소=친탁=매국'이라는 프레임이 굳어진 뒤였다.


만약 동아일보가 진실을 그대로 보도했다면 어땠을까.

미국이 30년 신탁통치를 주장했다가 5년으로 합의했고,

소련이 즉시 독립을 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당시 반미 정서가 강했던 한반도의 정치 지형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쌀값 폭등과 인플레이션으로 미 군정에 대한 불만이 높아가던 시기였다.

이 오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인식이 반전되었고,

미국의 지지를 받던 이승만의 입지가 강화되었다.

반탁운동을 주도하던 김구의 한독당은 위축되었고,

보수 진영이 득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나의 거짓 기사가 한 나라의 정치 지형을, 이념의 지도를,

권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은 것이다.

실험 참여자 중 단 0.1%(3명)만 가짜뉴스를 알아챘다


언론학자들은 가짜 뉴스를

"특정 의도로 허위정보를 만들어낸 주체가 신뢰도를 높이려고

언론 보도의 형식을 흉내 낸 것"이라 정의한다.

추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단순 오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75년 전 그날의 거짓말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은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그리고 언론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클릭 한 번으로 정보가 퍼지는 지금,

대한민국을 바꾼 단 하나의 거짓말은 여전히 경고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위험을, 권력이 개입한 언론의 무서움을,

그리고 진실을 지키는 일의 중요함을.

가뜩이나 고단하고 복잡한 삶에서 뉴스조차 스스로 검증해야 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불행하다.


"그들이 진짜라고 믿으면 그것이 진실이다"

-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 대사 中


이 얼마나 섬뜩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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