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이야기
나는 직장인 시절 운이 좋게도
주재원으로서 혹은 비지니스 초청으로
여러나라를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선 해외로 가가는 순간 제일 먼저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은
"음식 문화"이다.
나는 완전 토종 한국인의 입맛을 갖고 있어서
해외 생활은 음식 걱정으로 시작하였다.
베니스 비엔날레 주최측의 초청으로 이태리를 갔을 때도
현지 안내인도 못찾는 떡볶기와 짜장면 집을 찾아 내서
먹으러 간 적도 있었다.
식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한 민족의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 이 네 나라의 음식 문화를 들여다보면,
같은 인간이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얼마나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 수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식사는 하나의 의식이자 예술이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가난해도 식사만큼은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되는 성역이다.
최소 네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한 끼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앙트레(entrée)는 주된 요리 전 또는 식사의 두 가지 주요 코스 사이에
제공되는 요리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미국에서는 메인 요리라는 의미로 쓰인다. -
앙트레는 위에게 준비 신호를 보내고, 따뜻한 전채 요리로 본격적인 예고를 한다.
그리고 드디어 메인 요리가 등장한다.
오븐에 구운 고기가 최고이며, 물에 삶은 요리는 가난의 상징으로 여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포도주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좋은 포도주가 없다면 불완전한 식사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치즈와 과일, 그리고 커피나 아이스크림으로 입맛을 정리한다.
이 모든 과정에 몇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개의치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집중할 뿐이다.
우리나라처럼 10분 만에 후다닥 먹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것,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야만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둥바둥 사는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프랑스인들은 묻는다. 인생이란 결국 지금 이 순간의 연속 아닌가.
중국인들에게 음식은 우주의 이치를 담은 그릇이다.
음양오행 사상이 식탁 위에 구현된다.
차갑고 뜨거운 것, 달고 짠 것, 부드럽고 질긴 것이 한 상에 어우러져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몸의 균형이 깨진다고 믿는다.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회전판 위의 음식을 돌려가며 나눠 먹는 모습에서
우리는 중국인들의 집단주의와 조화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개인 접시가 아닌 공동의 그릇에서 각자 덜어 먹는 방식은,
개인보다 전체를 중시하는 그들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중국 요리의 화려함과 복잡함은 그들의 오랜 역사와 광활한 영토가 만들어낸 결과다.
지역마다 기후와 풍토가 다르니 음식도 천차만별이다.
사천의 매운 요리, 광동의 담백한 요리, 북경의 묵직한 요리.
하나의 중국 요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 속의 통일, 그것이 중국 음식 문화의 핵심이다.
일본인들의 식탁은 선(禪)의 정신이 살아 숨 쉰다.
간소하지만 완벽하고,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되,
불필요한 것은 철저히 배제한다.
회 한 점을 접시에 올리는 위치,
간장 종지를 놓는 각도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
제철 재료를 최고로 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믿는다.
봄에는 봄나물을, 여름에는 여름 생선을 먹는다.
계절감을 식탁 위에 옮겨놓는 것이다.
그릇의 선택도 중요하다.
음식과 그릇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일본인들은 식사를 조용히 한다.
음식에 집중하고, 맛에 집중한다.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음식에 대한 불경이다.
침묵 속에서 오감으로 음식을 느낀다.
이것이 일본식 음식 명상이다.
절제와 정제, 완벽에 대한 집착.
일본 음식 문화는 그들의 국민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인의 식탁은 풍성하고 시끌벅적하다.
작은 반찬 그릇들이 빼곡히 들어찬 밥상은 어머니의 정성을 담은 러브레터다.
김치만 해도 수십 가지, 계절마다 담그는 것이 다르다.
밥과 국, 그리고 수많은 반찬들.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인들은 함께 먹는 것을 중시한다.
혼자 먹는 밥은 밥이 아니다.
가족, 친구, 동료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먹어야 제맛이다.
개인 접시보다는 큰 그릇에 담아 함께 먹는 찌개와 전골이 발달한 이유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는 것도 한국뿐이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다.
또한 한국 음식에는 '손맛'이라는 신비로운 개념이 있다.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다.
정성이 맛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정성껏 차린 밥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분이 아니라,
사랑과 정성을 전달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프랑스는 현재를 누리라 말하고, 중국은 조화를 이루라 가르친다.
일본은 완벽을 추구하라 속삭이고, 한국은 함께 나누라 권한다.
네 나라의 음식 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음식을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닌,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더 빨리, 더 간편하게 먹으려 한다.
10분 만에 해치우는 식사, 걸어가며 먹는 음식, 화면을 보며 삼키는 끼니.
그러나 이 네 나라의 음식 문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먹고 있는가?
음식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프랑스인처럼 여유를 가지고,
중국인처럼 균형을 생각하며,
일본인처럼 재료를 존중하고,
한국인처럼 정성을 담아 먹는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식탁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학교이자 행복을 만드는 공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