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나라

재미난 이야기

by 제임스

도쿄의 지하철에서 누군가 발을 밟아도 "스미마셍"이라는 사과가 돌아오는 풍경,

베이징 거리에서 "카오(靠)!"라며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

그리고 서울에서 "아 진짜!" 하며 쏟아지는 감탄사들.


동아시아 세 나라의 이 대조적인 장면은 단순한 문화 차이를 넘어,

언어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대학시절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을 재밌게 읽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난무하는 욕설이었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무지막지한 욕에 거의 압살 되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의 욕이 그렇게 다양하고 푸짐한지 처음 알았다.


"뜬 물에서 건진 개구리 ㅈ맛 같은 새끼야"


당시 들은 얘기론 황석영 작가는 이런 욕을 수집하기 위해

오랜 시간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고생했다고 한다.



욕설은 분노의 정서를 바탕으로 대상을 향해 ‘모욕, 비난, 저주’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퍼붓는 말이다.

분노의 순간에 치솟는 극단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고 상대방에게

격렬한 반발과 정신적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불결하고 제어되지 않아 가장 야수적인 말이다.

상스럽고 불쾌하고, 해롭다.

말하는 사람도 피해를 본다.

친밀감의 표시일 때도 있지만,

품위 없고 막돼먹은 사람 취급당하기 쉽다.

그래서 욕설은 경멸의 대상이고 ‘공식적으로’ 금지된다.



일본어에 욕설이 적은 이유는 깊은 역사적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에도시대 이후 확립된 엄격한 신분제는 언어 사용에도 깊이 영향을 미쳤다.

상대의 지위에 따라 경어 체계가 세밀하게 분화되면서,

직접적인 욕설보다는 '존중의 결여'가 더 강력한 모욕의 수단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욕을 하면 바로 사무라이 칼에 목이 날아갈 판이니

하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고 한다.


20251004_072336.jpg 1893년에 발행된 도쿠가와 막부 형사도감


"바카(馬鹿)"나 "아호(阿呆)" 같은 단어도 한국이나 중국의 욕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순화된 표현이다.

일본 사회는 '혼네(본심)'와 '타테마에(겉모습)'를 구분하며

감정의 직접적 표출을 억제하는 문화를 발전시켰고,

이는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화가 나도 "무카츠쿠(짜증나다)"나 "우자이(귀찮다)" 정도의

완곡한 표현으로 감정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중국어의 욕설 체계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따마더(他妈的)", "차오니마(草泥马)", "왕바단(王八蛋)" 같은 표현들은

주로 가족, 특히 어머니나 조상을 욕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유교 문화권에서 효를 최고 덕목으로 여김에도 불구하고

가족 모욕형 욕설이 발달한 것은 역설적이다.

이는 가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문화에서

그것을 건드리는 것이 가장 강력한 모욕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욕설은 직접적이고 강렬하며,

광동어, 상하이어, 북경어 등 지역별로도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특히 광동어의 "디우(屌)"나 "푸가이(仆街)" 같은 표현들은

그 강도에서 북경어를 훨씬 능가한다.

중국인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욕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어의 풍부한 욕설 체계는 한국인의 정서적 직접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기쁨도 분노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화 속에서,

욕은 감정의 배출구이자 때로는 친밀감의 표현이 되었다.

"씨X", "X까", "개X" 같은 강한 표현부터

"젠장", "빌어먹을" 같은 중간 단계, "아이고", "어휴" 같은 순화된 감탄사까지,

한국어는 분노와 좌절의 스펙트럼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갖추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욕설이 단순히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군대나 운동부 같은 공동체에서 욕은 오히려 유대감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야 이 X아" 뒤에 붙는 웃음은 역설적으로 친밀함을 뜻한다.

이는 감정의 표출을 통해 관계를 확인하는 한국 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세 나라의 차이는 결국 감정 처리 방식의 차이다.

일본은 감정을 내면화하고 억제하며 조화를 추구하고,

중국은 강렬하고 직접적으로 분출하며 개인의 감정 표현을 중시하고,

한국은 표현하되 맥락과 관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유연성을 보인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회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소통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

일본 젊은 세대는 인터넷 문화를 통해 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국과 중국은 욕설 사용의 문제점을 인식하며 언어 정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여성과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언어의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고 있다.


결국 욕의 유무나 다양성은 어느 문화가 우월한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각 사회가 감정과 관계를 어떻게 다루어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지닌 힘을 이해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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