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망신 게시판

재미난 이야기

by 제임스

한 여행 유튜버가 따이족이 사는 중국 시골 마을을 걷다가 마주친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마을 한가운데 세워진 게시판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사진과 함께 박제되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게시판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일종의 '공개 망신 시스템'이었다.

위가 착한 사람 아래가 나쁜 사람


유튜버는 처음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한 아주머니의 호객 행위를 받았다.

숙소를 구하지 않느냐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던 그 아주머니는,

정작 숙소까지 태워달라는 부탁에는 알아서 걸어오라며 위치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 불친절함이 이상했지만,

마을 투어를 계속하던 중 다시 발견한 공개 게시판에서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


그 아주머니의 얼굴이 '마을의 몰상식한 인물 탑 3'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그 아주머니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유튜버는

화장실에 문조차 없는 열악한 숙소 환경을 경험하며,

왜 그녀가 게시판에 오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개 망신 문화는 중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황펑촌이라는 마을에서는 노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자식들의 이름과 사진,

개인 정보를 공개 게시판에 걸어 두었다.

2013년 제정된 노인보호법에 따라 60세 이상 부모에게 정신적·경제적 지원과 생활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이들을 공개적으로 망신주는 것이다.


선전시에서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CCTV 카메라가 무단횡단자를 실시간으로 포착해

대형 LED 전광판에 얼굴과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띄운다.

2017년 4월부터 10개월 동안 푸톈구의 한 교차로에만 13,939명의 무단횡단자가 전시되었다.

많은 이들이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의 이미지 삭제를 요청하며 벌금을 내기도 했다.



2018년 노동절에는 안후이성의 광장과 대형 전광판에 채무 불이행자들의

사진과 이름, 신분증 번호, 빚진 금액이 버젓이 게시되었다.

2019년에는 쓰촨성 영화관에서 '어벤져스' 상영 전 30초간 60명의 채무 불이행자 명단이

극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상영되기도 했다.

이들은 고속철도 탑승 금지, 호텔 투숙 제한, 은행계좌 동결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는

경고 메시지도 함께 전달되었다.


악성 채무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중국 쓰촨 성 영화관 상영물


이러한 공개 망신 전술은 문화혁명 시기의 '투쟁 대회'를 연상시킨다.

당시 '계급의 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당하고,

고발당하고, 구타당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

학생들은 교사를 고발하고, 친구와 배우자는 서로를 배신하도록 강요받았으며,

아이들은 부모를 폭로하도록 조종당했다.


최근에는 공무원들도 이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024년 난산 지방정부는 '나태한' 하급 공무원 8명의 이름을 공개하며 망신을 주었다.

2025년에는 '달팽이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통해 가장 저조한 성과를

낸 공무원들을 공개적으로 망신주는 제도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중국 저장성 진윈현 업무 보고대회에서 현 공무원들이 '달팽이상'을 받고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 공개 망신을 통한 사회 통제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2021년 7월부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명단을 공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시금 지급명령 결정을 받고도 30일 내에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미지급 양육비가 3천만 원 이상이거나,

이행명령을 받고도 3회 이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성명과 나이, 직업, 양육비 채무 불이행 기간 및 액수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3년간 공개된다.


2021년 12월 19일,

처음으로 10년 8개월간 1억 2천560만 원을 미지급한

50대 남성과 14년 9개월간 6천520만 원을 미지급한 50대 남성의 명단이 공개되었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양육비 미지급자가 10명 중 8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제도는 개인의 책임을 촉구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다.


배드파더스 게시판


하지만 이름과 직업이 공개되어도 여전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례들이 많다는 점에서,

공개 망신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공개 망신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한번 인터넷에 오른 정보는 영원히 삭제되지 않으며,

그 여파는 개인의 삶 전체를 뒤흔든다.


유튜버가 마을 한가운데서 목격한 그 게시판은 단순한 공지판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 그리고 집단적 망신주기가 일상이 된 사회의 단면이었다.

그것은 과연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인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형태인가?

우리는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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