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강릉에 사는 후배가 놀러 오라고 했다.
지난 주말, 나는 동해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다는 언제 봐도 청량하다.
가슴속 답답함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힘이 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저녁 식사자리에 후배는 아내를 동반해서 나왔다.
그들의 사연을 듣는 순간, 나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던 그들은 젊은 날의 어떤 이유로 헤어졌고,
그렇게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우연한 자리에서 재회했다고 한다.
마침 둘 다 이혼한 상태였고 초고속으로 결혼했다.
식당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알콩달콩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첫사랑의 설렘과 중년의 성숙함이 공존했다.
3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아니 어쩌면 그 시간 때문에 더욱 단단해진 사랑처럼 보였다.
부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부러웠다.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후배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지금처럼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을 거예요.
그 긴 시간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가끔 첫사랑을 떠올린다.
문득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만약 다시 만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설문조사에 따르면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실망스럽다고 답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세월의 흔적, 변한 외모와 성격 때문이리라.
첫사랑은 기억 속에서 너무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어서,
현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후배 부부는 달랐다.
그들은 변한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그 변화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었다.
20대의 풋풋함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 자리에 인생의 무게를 견뎌낸 단단함이 자리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누군가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누군가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추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70%의 사람들이 첫사랑을 추억 속에 묻어두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첫사랑은 오래된 앨범 속 사진처럼,
가끔 꺼내보며 미소 짓는 존재여야 한다고 믿었다.
현실로 끌어내면 환상이 깨질 것 같았다.
하지만 후배 부부를 보며 깨달았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은 어쩌면 우리가 만든 핑계일지도 모른다.
사춘기의 미숙함, 시간의 부족함을 탓하지만,
진짜 이유는 우리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바다가 그랬던 것처럼, 첫사랑도 청량하다.
마음 한구석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힘이 있다.
그것이 추억으로 남아 있든, 후배 부부처럼 현실이 되든,
첫사랑은 우리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다시 만나느냐 마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순수했던 감정을 기억하고, 그 설렘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첫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이 아닐까.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좋아할 수 있었던 그 능력을 기억하는 것 말이다.
동해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파도를 일으킨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 순간 다른 모습이다.
첫사랑도 그렇다. 추억 속에 고정된 듯 보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