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거울, 갈라진 시간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얼마 전이랄 것도 없는, 몇십 년 전의 이야기다.

그때 일본이 바라본 한국의 모습은,

말 그대로 ‘관심의 끄트머리’에도 서지 못하는 나라였다.

‘미개’하고 ‘가난’하고, 왠지 모르게 ‘열등’하다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 거울에 비친 초라한 모습 때문에,

해방이 되고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땅에 뿌리내려 살아야 했던

우리 선배들은 말할 수 없는 무시와 차별의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그 상처의 깊이를 말해주는 사연으로 늘 따라다니는 이름이 있다.

추성훈이다.

젊은 시절, 그는 일본인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툼이 벌어졌다.

그 싸움 끝에 체육관으로 불려 간 그는 선생님께 죽을 만큼 혼이 났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보다 더 깊이 파고든 것은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감히... 일본 사람을 때리지 마!”


그 순간, 그는 한 개인으로서의 잘못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그 이유만으로 징벌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였다.

그곳에 사는 우리 교포들은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정체성을 꽁꽁 숨기고 살아야 했다.

자신의 뿌리가 드러나는 순간 닥쳐올 불이익과 따가운 시선이 두려워서였다.

어느 교포는 “엄마가 한국 사람인 것이 알려지는 게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었다”고 했을 정도였다니,

그 마음의 족쇄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그런데 세월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난꾼이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세대 간의 깊은 단절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일본 10대들은 20대나 30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들의 형, 누나 세대가 겪었던 ‘일본이 한국을 앞지르던 시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인 20~30대들은 2010년대,

일본의 1인당 GDP가 5만 달러를 넘나들던 엔고의 전성시대를 경험했다.

그들은 '싸고' 그래서 '거저 먹기'나 다름없던 한국을 당일치기로

여행하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이제는 한국인들이 '엔저'를 타고 '싸게' 일본을 찾고 있는 반면,

일본 10대들에게 한국은 '비싸지만,

너무 좋고 멋진 곳이기에 감내하고서라도 꼭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다른 경험에서 비롯된 시선의 차이는 필연적인 갈등을 낳는다.

어른들이 "한국은 여전히 일본 아래"라는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10대들은 순수한 의문과 함께 되받는다.

"제가 볼 땐 한국이 더 잘 사는데 왜 자꾸 그래요?"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K팝, K-뷰티, K-드라마로 대표되는 선진 문화의 표상이며,

오히려 일본이 따라잡아야 할 존재다.


지금은 한국의 위상이 너무 높아지다 보니 믿기 힘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언어학자인 노마 히데키 교수는 일본에서 엄마가 한국 사람인 걸 자랑하고 싶어서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한국어로 전화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심지어 어느 한국인은 일본 거래처 담당자의 중학생 딸이

어째서 나를 한국인으로 낳지 않은 거야 라고까지 말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요즘엔 조부모 중에 한국인이 한 명이라도 껴 있으면 한일 혼혈이다,

한국인이다라며 본인을 셀링하거나,

인스타 자기 소개 글에 태극기를 걸어 놓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불과 십여 년 사이에 거울은 완전히 뒤집혔고,

그 거울을 보는 세대의 눈까지 갈라져 버렸다.

그 거친 파도 속에서 상처받으며 정체성을 숨겼던 이들을 떠올리면,

이 격변의 시대가 주는 복잡미묘한 감정은 여전히 말로 다 하기 어렵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것들마저

이렇게나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그 변화의 바람 앞에서 우리가 더 단호하게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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