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썽사나운 정치꾼들의 현수막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현수막 공해, 일상을 점령한 증오의 언어


장을 보러 가려면 우리 동네 대형마트 횡단보도 앞에

걸려 있는 정당 현수막을 보아야 한다.

출퇴근길에도 산책길에도 강제로 보게 된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봐야 한다.


"○○당 규탄한다", "매국노 처벌하라". 어제 없었던 현수막이다.

밤사이 누군가 와서 전봇대에 매달고 갔다.

그 아래로는 "△△당 거짓 선동 중단하라"는 파란 현수막이 너덜거린다.

산책로 입구에는 "친일 척결", 조금 더 가면 "종북 척결".

마치 전쟁터의 깃발처럼 거리는 정치 구호로 뒤덮였다.



정당현수막을 보면 마치 전쟁터에 온 기분이 든다.

욕설·혐오 발언이 담긴 현수막을 보면 자괴감까지 든다.

정치는 수준이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려 해도

그 도를 넘어섰다.


과잉 자극은 공해다.

애써 무시하거나 감내하며 살다 보면 감각이 마비되고 정신이 피폐해진다.

정당 현수막은 가장 공적인 공간에서 우리들의 시각을 공격한다.

텔레비전은 끌 수 있고 댓글은 넘길 수 있지만 현수막은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방적인 폭력이다.



법이 만든 난장판


이 난장판은 법이 만들었다.

2022년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며 정당 현수막에 관한 모든 제한이 사실상 사라졌다.

기존에는 시·도지사에게 문구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이제 "통상적인 정당활동"에 해당하면 아무 말이나 쓸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어디까지가 통상적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규제하지 못한다.

2024년 1월부터 읍·면·동마다 정당별로 2개까지만 설치할 수 있도록 다시 제한했지만,

그 '2개'조차 상대를 헐뜯는 문구로 가득하다.


더 심각한 건 앞으로다.

공직선거법 제90조 제1항 제1호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이 조항은 선거 전 120일부터 현수막 등을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제했는데,

효력이 상실되면 정당뿐 아니라 누구나 정치 현수막을 걸 수 있게 된다.

이미 정신이 혼미한데, 그때가 되면 거리는 어떤 모습일까.


보다 못한 인천시가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2024년 7월 대법원은 인천시와 부산시의 규제 조례가

법률우위 원칙에 위배된다며 무효 판결을 내렸다.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근거 없이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 개정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통과는 요원하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제한하는 법을 왜 서둘러 통과시키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어제 이재명 대통령이 길거리에 걸린 정당 현수막을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내용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발언 하루 만에 여당인 민주당은 정당 현수막 규제 법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최근 김현지 실장을 비판하는 현수막들이 많아지자,

대통령이 이에 불쾌감을 느껴 직접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즉각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입틀막'이며 자신들이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입법을 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환영할 일이다.

과도한 현수막 난립은 이미 오래된 문제로,

누가 제기하든 제도 개선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때만 규제를 말하고,

유리할 때는 침묵한다는 점이다.

진정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물리적 공해, 정신적 공해


현수막은 말 그대로 쓰레기다.

플라스틱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현수막 한 장당 2.37kg의 탄소가 배출된다.

연평균 126만 건이 신고됐으니, 참나무 30만 그루를 심어야 흡수할 수 있는 양이다.

철거 후 소각 처리할 때도 탄소가 발생하며 톤당 약 30만원의 세금이 든다.

정치인들이 온라인 댓글보다 짧은 말로 서로를 헐뜯는 일에 우리의 세금과 환경이 소비된다.


정신적 공해는 더 크다.

"타도", "척결", "탄핵", "감옥"이라는 단어들이 일상 공간을 점령했다.

매일 지나는 산책길이 증오의 전시장이 됐다.

내용이라도 착하면 좋겠다.

정치의 목적이 무엇이었나.

끝없는 싸움인가? 적을 죽이고 내가 이기는 것인가?


거대 양당 체제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쉽게 망각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자유, 생명, 행복 추구를 보장하는 것이며 정치는 그 수단이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는 정당의 집권을 위한 대국민 퍼포먼스로 전락했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정치


이 시대는 신냉전,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도래라는 거대한 전환 앞에 서 있다.

세상을 이분법적 선악 구도로 나누고, 싸워서 이기려는 정치는 지속 불가능하다.

핵전쟁과 기후위기와 초인공지능, 셋 중 하나만 잘못돼도 공멸이다.

21세기 정치의 목적은 조화여야 한다.

진보와 보수, 남과 북, 인간과 자연, 모든 이분법을 넘어서는 정치가 필요하다.


오늘도 현수막은 바람에 펄럭인다.

"규탄", "척결", "감옥".

그 천박한 구호들 사이로 단풍이 물들어가지만,

아무도 단풍을 보지 않는다.

정쟁의 현수막부터 걷어치우자.

증오가 아닌 공존의 메시지를, 싸움이 아닌 살림의 정치를 바란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내 산책길만이라도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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