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흥미롭게도 우리 속담에는 정반대의 모순이 존재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진짜를 알 수 없다는 뜻이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가?"는
어떤 일을 경험하지 않고도 짐작하여 알 수 있다는 의미다.
한때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그거 해봤어요? 해보지 못했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는
대사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론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두 속담의 공존은 인류가 오랫동안 경험과 지식 사이에서 고민해왔음을 보여준다.
요즘 책방에 가보면 주식, 부동산, 연애, 학습, 아이 교육 등 온갖 분야의
코칭 서적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과연 이 책들의 저자들은 그 분야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을까?
아니면 단지 이론과 추측으로 쓰인 것일까?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원칙이 '지식과 경험의 조화'였다.
경험만으로는 새로운 도전과 목표를 이룰 수 없고,
지식만으로는 주변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남에게는 쉽게 말한다. "그걸 꼭 먹어봐야 아냐고!"
하지만 99%의 일반인은 먹어봐야 알고,
대부분은 몇 번씩 먹어봐야 겨우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부는 평생 먹어보고도 결국 모를 수 있다.
"이번 건 새로운 거야"라며 스스로를 속이면서 말이다.
공자는 사람의 지혜를 네 단계로 나누었는데,
이는 경험과 지식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는 타고난 사람으로,
멀리서 봐도 직감적으로 아는 상위 1%의 선지자다.
이들은 "꼭 먹어봐야 아는가?"라는 속담을 실천하는 사람들로,
경험 없이도 이성과 통찰로 진리를 파악한다.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는 책이나 스승에게 배워서 아는 사람이다.
일부 상위 부자들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을 전수받고,
특별히 교육기관에서 전담 교육을 받기도 한다.
안타까운 건 배운다고 다 아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본질을 깨닫지 못하면 지식은 공허한 관념에 그친다.
곤이학지자(困以學之者)는 배우고 난 후 실제로 여러 번 먹어보며
그 다양한 모양과 냄새로 결국 알게 되는 사람이다.
학(學)과 습(習)의 과정을 거쳐 깨우치는 수준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 목표로 삼아야 할 단계다.
이들에게는 "먹어봐야 안다"는 속담이 적용된다.
경험이 지식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 대부분은 곤이불학자(困以不學者)에 속한다.
배우고 나서 여러 번 먹어보고도 그 원리를 깨우치지 못해,
이번 것은 새로운 것으로 알고 죽을 때까지 먹는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달라"라며 남의 말에 사기도 잘 당한다.
이들에게는 "먹어봐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적용된다.
서양 근대 철학 역시 이 문제를 천착했다.
경험론은 베이컨에서 시작되어 로크, 흄으로 이어지며
모든 지식은 감각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로크는 인간의 마음을 '타불라 라사(tabula rasa)-빈 서판',
즉, "사람은 처음에는 백지 상태이며 이 백지에는 환경으로부터 습득한 것들이
차차 쓰이게 되고 채워지면서 사람됨이 완성된다"는 사상이다.
빈 서판은 ‘깨끗이 닦아낸 서판(scraped tablet)'이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의역한 말이다.
17세기 당시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당시 세습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을 뒤흔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이 사상은 불합리한 차별 철폐 및 교육 정비 등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근대 경험론의 상징어이기도 하다.
핵심은 “인간 정신은 선천적 관념 없이 태어나며, 지식은 경험에서 온다”는 명제이다.
반면 합리론은 데카르트, 스피노자로 대표되며
이성만으로 보편타당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두 사조는 각자의 길을 끝까지 밀고 나가다 자기모순에 빠졌다.
경험론은 흄에 이르러 극단적 회의론으로 귀결되었고,
합리론은 경험과 동떨어진 독단적 형이상학으로 전락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한 것이 칸트였다.
칸트는 "우리의 인식은 경험에서 시작하지만,
보편타당한 지식의 완성은 지성의 개념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두 사조를 종합했다.
지식의 내용은 경험에서 오지만, 그것을 체계화하는 것은 이성의 틀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 철학적 논쟁은 어떻게 적용될까?
의료 분야 연구에 따르면 경험 많은 의사와 경험 적은 의사는
진단 과정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 치료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경험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이론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경험이 실제적 전문성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결국 가까운 미래에는 AI가 1차 진단과 데이터 분석(지식)을,
인간 의사가 최종 판단과 환자 케어(경험)를 맡는 협력 모델이
미래 의료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숙련 상담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현장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축적된 실천적 지식을 더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인 성찰과 이론적 틀을 갖추려는 노력을 병행했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아무리 글과 사진으로 학습해도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는 학습이
진정한 업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이론적 부분에서 놓칠 수 있는 것을 현장 경험이 보완한다"고 강조했다.
존 듀이는 이론과 경험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지식은 문제 상황에서 출발하며,
탐구를 통해 얻어진 지식은 다시 행동과 실천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듀이에게 지식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보증된 주장가능성'일 뿐이며,
끊임없는 경험을 통해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책방에 쏟아지는 코칭 서적들의 문제는
경험이나 이론 중 하나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아니라,
두 가지의 순환적 검증 과정 없이 쓰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결국 경험이 중요한가,
지식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경험 없는 지식은 공허한 관념에 불과하고,
이론 없는 경험은 맹목적인 시행착오에 그친다.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전문가란 아주 좁은 범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오류를 경험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진정한 전문성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그것을 이론적으로 성찰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그러니 "그걸 꼭 먹어봐야 아냐고?"라고 쉽게 말하지 말자.
그리고 냄새나고 더럽더라도 피하지 말자.
"다음에는 꼭 알아내리라" 하고 부지런히 먹도록 하자.
특히 젊었을 때 다양하게 먹어봐야 한다.
그래야 나이 들면 싫은 건 싫다고 할 수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하려면 먹어봐야 하지만,
왜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를 설명하려면 지식이 필요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과 지식을 대립시키지 않고,
두 가지를 통합하여 끊임없이 검증하고 성장하는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