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방패가 내려가는 밤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어둠이 내리고 커튼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

구름을 뚫고 나타나는 황금빛 방패.

"따-단!" 하고 울리는 그 웅장한 소리와 함께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

워너 브라더스!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였고, 추억의 한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황금 방패가 빨간 'N'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넷플릭스가 122조 원에 워너 브라더스를 인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세월인가.


1923년, 폴란드에서 건너온 네 형제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그 작은 꿈이 한 세기를 관통해 우리 곁에 있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단 하나,

모두가 미쳤다고 할 때 전 재산을 걸 수 있는 그 뜨거운 심장뿐이었다.


세상이 "영화에 소리가 왜 필요해?"라고 비웃을 때,

그들은 집을 팔고 빚을 내어 유성영화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게 탄생한 '재즈 싱어'는 세상을 뒤집었다.

이것이 워너의 DNA였다.

남들이 두려워할 때 과감히 뛰어드는 야생의 본능.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 1927


그래서 우리는 호그와트의 마법을 경험할 수 있었고,

매트릭스 속 총알이 느리게 날아가는 광경에 입을 벌렸으며,

히스 레저의 조커 앞에서 소름이 돋았다.

디즈니가 "꿈과 희망"을 속삭일 때,

워너는 "세상은 원래 엉망이야, 그래도 버텨야지"라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워너를 사랑한 이유였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진짜 세상을 보여주는 유일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거인도 병든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2018년, AT&T라는 통신 회사와의 합병.

그때부터였다.

관리와 효율의 전문가들이 영화 세트장에 엑셀 시트를 들고 나타났다.


"이 장면, 비용 대비 효과가 없으니 삭제하세요."


미슐랭 셰프에게 "수입산 재료 쓰세요"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거장들이 짐을 싸고 떠났다.

창의성이, 워너의 심장이 서서히 멈춰갔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AT&T가 손을 떼자,

디스커버리와 합쳐지면서 70조 원의 빚이 생겼다.

빚이 70조면 회사는 어떻게 될까?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까?"가 아니라

"오늘 이자를 어떻게 막지?"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끔찍한 순간이 왔다.

《배트걸》 폐기 사건.

촬영도 끝나고, 편집도 끝났고,

1,200억 원을 쓴 영화를. 개봉도 안 하고 그냥 버렸다.

세금 환급받는 게 더 이득이니까.

영화사가, 자식 같은 영화를 돈 몇 푼 아끼려고 생매장한 것이다.

그날, 나는 알았다.

워너는 이미 죽었다고.



그리고 넷플릭스가 왔다.

돈 가방을 들고, "내가 다 갚아줄게. 대신 나랑 같이 가자"라고.

122조 원!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왜 넷플릭스는 이 돈을 쓰려고 했을까? 망해가는 회사를 왜?

답은 간단했다.

넷플릭스에게 없는 단 하나.


"족보와 근본"


《오징어 게임》이 대단한가?

물론이다.

《피지컬: 아시아》가 재미있는가?

당연하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이 작품들이 30년 후, 50년 후에도 살아남을까?

할아버지가 손주 무릎에 앉혀놓고 "옛날에 이런 게 있었단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면 워너 브라더스는?

80년 된 배트맨.

20년 넘게 사랑받는 해리 포터.

전 세계 시트콤의 바이블 《프렌즈》.

이건 콘텐츠가 아니다.

문화유산이다.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아는, 대를 이어 내려가는 이야기들.


넷플릭스는 깨달았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100년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사버리자. 명품을 못 만들면, 명품을 만든 장인을 데려오면 되지."


이제 상상해보라.

빚 걱정 없는 워너의 창작자들이 넷플릭스의 무한한 자본을 만난다면?

해리 포터가 완벽하게 부활한다.

지금까지 영화는 두 시간 러닝타임에 맞추느라 원작 내용을 다 잘라냈다.

하지만 이제는? 책 한 권당 드라마 열 편씩.

호그와트 기숙사 구석구석, 마법 수업 하나하나를 모두 살려내는 것이다.


DC 유니버스가 폭주한다.

배트맨, 조커, 슈퍼맨. 그동안 "애들이 봐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가위질을 당했던 그들이,

이제 진짜 어른들을 위한 피 튀기고 살벌한 다크 히어로로 돌아온다.

굶어 죽어가던 호랑이에게 아이언맨 슈트를 입혀주는 격이다.

이건 부활이 아니다. 괴물의 각성이다.

그리고 지금 가장 떨고 있을 곳은? 디즈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라이벌이 숙적과 한 몸이 되어버렸으니.



하지만 우리는 박수만 칠 수 없다.

이 거대한 공룡의 탄생 뒤에는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니까.

경쟁자가 사라진 시장.

절대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


지금까지는 넷플릭스가 요금을 올리면

"디즈니로 갈래, 와챠로 갈래" 하며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배트맨도 해리 포터도 프렌즈도 모두 넷플릭스 안에 갇혀 있다면?

"한 달에 3만 원, 싫으면 보지 마세요"라고 나온다면?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결제 버튼을 눌러야 한다.

아이가 "아빠, 해리 포터 보고 싶어요"라고 할 때,

"넷플릭스는 나빠서 안 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독점의 공포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


하지만 돈보다 더 서글픈 것이 있다.

영화관이다.

그 낭만의 시대가 진짜로 끝났다는 것.

워너 브라더스는 극장을 최후의 보루로 여긴 할리우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영화는 암전된 극장에서, 웅장한 사운드로, 다 같이 숨죽이며 봐야 제 맛이다.

이 고집을 끝까지 지켜주던 곳.


하지만 넷플릭스는 다르다.

그들에게 극장은 마케팅용 간판일 뿐이다.

진짜 무대는 거실 TV와 출퇴근길 스마트폰이다.


주말에 팝콘 냄새를 맡으며 설레던 그 공기.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옆 사람과 함께 "헉" 하고 숨을 삼키던 그 전율.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와, 미쳤다" 하고 떠들던 그 소란스러움.



100년 전통의 워너 브라더스 간판이 내려가는 순간,

우리가 사랑했던 그 영화적 체험의 시대도 함께 저물어가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영화는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소비하는 데이터 조각이 되어버렸다.


워너 브라더스의 몰락, 그리고 넷플릭스와의 결합.

이건 분명 초거대 공룡의 탄생이고,

우리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축복일 수 있다.

죽어가던 해리 포터가 다시 살아난다는데, 팬으로서 가슴 뛰는 일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씁쓸한 작별 인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20세기 내내 사랑했던,

투박하지만 뜨거웠던 낭만의 시대가 차갑고 빈틈없는 효율과 알고리즘의 시대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장면이니까.


조만간 넷플릭스를 켜면 빨간 'N' 로고와 함께 워너의 영화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는 그 편리함에 감탄할 것이고 극장이라는 단어도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비 오는 날이나 옛날 영화가 생각나는 밤이면,

구름 사이를 뚫고 황금 방패가 번쩍이면서 "따-단!" 하고 웅장하게 울리던

그 오프닝이,

극장 의자에 파묻혀 느꼈던 그 설렘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 같다.



영화사 오프닝 영상 모음

https://youtu.be/1FWr9f9Z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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