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술공화국의 슬픈 초상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최첨단 IT 국가의 전근대적 풍경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묘한 역설로 가득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석구석 깔려 있으며,

AI와 양자컴퓨터를 논하는 이 나라에서,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은 점집 방구석에서 이루어진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을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최첨단 IT 국가"라고 비꼬았을 때,

우리는 그저 웃어넘길 수 있을까?



홍대와 강남 거리를 걸어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타로 가게요, 사주 카페다.

편의점보다 신당 깃발을 찾기가 더 쉽다는 우스갯소리가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4조에서 10조원에 달하는 점술 시장.

이는 우리나라 전체 영화 산업보다 큰 규모다.

영화표 15,000원은 비싸다고 벌벌 떨면서,

점집에서 독채 10만 원 내는 것은 주저하지 않는

이 기묘한 소비 패턴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불안을 먹고 자라는 괴물

점술 시장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경제 성장률이 1%대를 헤매고,

물가는 치솟고,

취업문은 좁아지고,

시집 장가 가기도 어려운,

내 집 마련은 꿈같은 이야기가 된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시스템을 믿지 않는다.


국가도, 은행도, 심지어 가족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극도의 공포감.

바로 이 지점에서 '주식회사 무당'의 영업이 시작된다.

그들이 파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확신'이라는 이름의 마약성 진통제다.



"네 잘못이 아니야, 때가 안 맞았을 뿐이야, 내년에는 대운이 들어와."


취업 면접에서 떨어지고, 코인 투자로 돈을 날리고,

전세 사기로 보증금을 떼인 청년들에게 이보다 더 달콤하고 가성비 좋은 위로가 어디 있겠는가?

놀라운 것은 이 시장의 핵심 고객층이 2030 MZ세대,

심지어 10대 알파 세대라는 점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가장 똑똑한 세대가 왜 전근대적 미신에 매달리는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너무나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상담은 기록이 남고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점집은 기록도 안 남고 듣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해준다.

불안을 잠재울 비용으로 5만 원이면 싸다는 계산이다.


나라의 망조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년들의 점집 행렬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사회 안전망이 붕괴된 시대,

국가가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니 점쟁이가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니까.


하지만 기업 총수들이, 정치인들이,

심지어 이 나라의 대통령까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점집을 찾는다면?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미신을 넘어 국가적 재앙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천공, 건진법사라니!



AI와 빅데이터로 정책을 설계해야 할 청와대가,

복잡한 국제정세를 분석해야 할 대통령이,

허름한 점집의 사주팔자에 의존한다면 이는 심각함을 넘어 망조에 가깝다.

한 나라의 운명이 사리를 던지는 무당의 손끝에 달려 있다는 것,

이보다 더 끔찍한 코미디가 어디 있겠는가?


역사를 돌이켜보면,

제국의 몰락은 언제나 이성의 후퇴에서 시작되었다.

로마가 기독교 신비주의에 빠져들 때,

조선이 무속과 풍수에 집착할 때,

그들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합리적 판단과 과학적 사고 대신 점괘와 길흉화복에 의존하는 순간,

한 사회는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인과관계를 잃어버린 사회

왜 우리는 점술공화국이 되었는가?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사회가

인과관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성실하게 살면 내 집 하나는 장만할 수 있다는 믿음,

범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는다는 정의.

이 모든 상식이 무너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논리적 설명보다

초자연적 힘에 기대고 싶어 한다.


"네가 못난 게 아니라 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는 말이

"더 노력하라"는 조언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강력하다.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보상이 사라진 자리에 요행과 운빨을 바라는

욕망이 독버섯처럼 자라난 것이다.

점술공화국은 결국 병든 대한민국 자본주의와 공정한 사회의 그림자다.


누가 운전대를 쥘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점집을 욕하고 무당을 사기꾼이라 손가락질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점술에 의존하는 개인을 탓하기 전에,

왜 우리가 점집에 갈 수밖에 없는지 그 처참한 현실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사리를 던지는 무당의 손끝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나의 두 다리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파는 것은 확률일 뿐이고, 우리가 살아내는 것은 현실이다.

누군가 우리의 불안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할 때,

그 불안을 담보로 영혼까지 저당 잡혀서는 안 된다.

가장 용한 점쟁이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성과 직관이다.

미래는 복채 봉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 속에 숨어 있다.

적어도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남의 손에 맡기지는 말아야 한다.

그 차가 낭떠러지로 갈지 꽃길로 갈지는,

운전대를 쥔 나만이 결정할 수 있으니까.


점술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그 첫걸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주팔자가 아니라,

이성을 포기하고 미신에 의존하는 우리 자신의 나약함이다.

그리고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점집 대신 현실을,

복채 대신 책임을, 운명 대신 의지를 선택하는 그날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여전히 점술공화국의 국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최첨단과 전근대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합리와 미신이 뒤섞인 이 역설의 땅에서...

매거진의 이전글황금 방패가 내려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