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공간을 그리다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사우나의 뜨거운 열기에 몸을 맡기는 순간,

일상에 쌓인 피로가 스르르 풀린다.

숨이 막힐 듯한 열기 속에서도 우리가 사우나를 찾는 이유는

그 나른한 개운함 때문이다.

집에서 매일 샤워를 할 수 있게 된 지금도,

대중탕만큼 피로를 깨끗이 씻어주는 곳은 없다.


하지만 목욕탕만큼 엄격한 금기의 공간도 드물다.

남탕과 여탕은 철저히 구분되어, 이성 간의 출입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가 된다.

벗은 몸으로 있을 이성들을 상상하면,

청소년은 물론 성인조차 한 번쯤 훔쳐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화가들은 이 금지된 공간을 상상 속에서 캔버스에 담아냈다.


20251210_171622.jpg 로렌스 앨마 태디마, 테피다리움에서, 1881


로렌스 앨마 태디마의 <테피다리움에서>는 로마 시대 개인 사우나 시설을 그린 작품이다.

역사상 목욕을 가장 사랑했던 민족은 로마인이었다.

기원전 33년 율리아 수로가 건설되면서 로마에는 풍부한 물이 공급되었고,

목욕 문화가 꽃피었다.

부유층에게 테피다리움은 단순한 목욕 시설이 아니라 휴식과 사교의 공간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그림 속 여인은 곰 가죽 위에 나른하게 누워 있다.

왼손에는 낙타 깃털 부채를, 오른손에는 몸을 긁는 도구를 쥐고 있다.

로마인에게 목욕은 단순히 씻는 행위가 아니라 쾌락의 의식이었다.


이 여인은 미모와 교양을 갖춘 고급 매춘부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상류층 여성들을 대신해 사교계를 누볐다.

그녀들은 개인 목욕탕을 갖춘 저택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태디마는 로마 궁정 여인들의 삶에 깊은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1881년 나무판에 그린 이 작품은 24×33센티미터의 작은 크기지만,

로마 사회의 은밀한 단면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the_turkish_bath,1862,oil_on_canvas_on_wood,_diameter_108_cm,muse_du_louvre,_pa_chansol21.jpg 앵그르, The Turkish Bath (터키 목욕탕), 1862

앵그르의 <터키탕>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그 원형 캔버스에 당혹감을 느꼈다.

마치 열쇠구멍으로 금지된 공간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앵그르는 정확히 그 효과를 노렸다.

어린 시절, 목욕탕은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억지로 가야 하는 곳이었고,

같은 반 친구라도 만나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중세 유럽의 평민들도 비슷했다.

목욕 시설을 갖추기엔 비용이 너무 컸고, 대중탕은 남녀가 함께 이용하는 혼탕이었다.

자연스럽게 은밀한 만남의 장소가 되었고, 결국 창녀와 건달들의 공간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화가들에게 목욕하는 여인만큼 매혹적인 소재는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이 주제에 흥미를 느낀 앵그르는,

터키 주재 영국 대사 부인이 쓴 견문기를 읽고 83세의 나이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직경 198센티미터의 원형 캔버스 안에는 상상 속 할렘의 여인들이 가득하다.

중앙의 여인은 악기를 들고 있고,

오른편의 관능적인 포즈를 취한 여인은 앵그르의 두 번째 부인 델핀을 모델로 했다.

서로의 가슴을 만지는 두 여인은 동성애를 암시하며,

왼쪽 끝의 요염한 여인은 구도를 위해 나중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누드화의 정물화라 불릴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여성의 몸을 담고 있다.

앵그르가 평생 탐구한 여성 누드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20251210_172527.jpg 세잔, Large The Large Bathers (대수욕도), 1899-1906


목욕탕은 여전히 금지된 공간이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화가들은 캔버스 위에서 이 금기를 넘어섰고,

우리는 그림을 통해 안전하게 그 공간을 들여다본다.

목욕탕은 여전히 은밀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영원히 매혹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



https://youtu.be/IYd1-cPwQ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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