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2019년 12월,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리치 오디 갤러리.
정원사가 건물 외벽을 뒤덮은 담쟁이덩굴을 제거하던 중
작은 금속문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검은 쓰레기 봉투에 싸인 채 22년 동안 행방불명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 숨어 있었다.
1997년 2월 도난 당시 미술계는 발칵 뒤집혔고,
내부 침입 흔적조차 없이 감쪽같이 사라진 그림의 행방을
놓고 수많은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림은 마치 농담처럼,
바로 그 갤러리 벽 속에서 조용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난 10개월 전 밝혀진 비밀이다.
1996년, 18세 미술학도 한 명이 이 그림을 감상하다가
1912년 이후 실종된 클림트의 다른 작품과 얼굴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X선 형광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림 밑에서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두른 같은 여인의
또 다른 초상화가 드러난 것이다.
클림트가 남긴 유일한 이중초상화였다.
왜 화가는 한 여인의 얼굴을 두 번 그렸을까?
왜 그는 완성된 그림 위에 다시 붓을 들었을까?
클림트는 이 작품을 1916년에서 1917년 사이 제작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해였다.
죽음을 1년 앞둔 화가는 무엇을 생각하며 이 여인을 그렸을까?
금박과 장식으로 뒤덮인 '황금시대'의 화려함은 사라지고,
대신 절제되고 생기 넘치는 표현주의적 스타일이 화폭을 지배한다.
여인은 살짝 고개를 돌린 채 수줍은 듯 관람객을 응시하는데,
그 갈색 머리와 붉은 입술에는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담겨 있다.
X선 분석이 보여준 아래 그림의 여인은 큰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차림이었다.
같은 얼굴, 다른 차림새.
클림트는 왜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렸을까?
어떤 이들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그리움을 담아 덧칠했다고 추측한다.
또 다른 이들은 화가의 예술적 불만족이 두 번의 초상화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여인의 정체조차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클림트가 이 여인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렸다.
마치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것처럼.
22년간의 실종은 이 작품에 또 다른 층위의 의미를 더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견된 그림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9년 회수 이후 두 남성이 자신들이 범인이며
2015년에 돌려놓았다고 주장했지만,
이탈리아 검찰은 2021년 사건을 미제로 종결했다.
범인도, 동기도, 그 긴 시간 동안 그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어둠의 시간 동안 그림 속 여인은 정말로
숨을 쉬며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담쟁이넝쿨 뒤에서, 두 겹의 초상화가 겹쳐진 채로.
60×55cm의 작은 캔버스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방대하다.
클림트의 마지막 붓질, 두 번 그려진 여인의 얼굴, 22년간의 침묵,
그리고 기적 같은 귀환.
X선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초상화는 이 작품을 단순한 그림이 아닌,
시간과 비밀이 켜켜이 쌓인 문화적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화가가 남긴 이중의 초상, 23년간의 실종, 그리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이 모든 이야기가 겹쳐지며, 한 폭의 초상화는 우리 시대의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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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