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의 이면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앤디 워홀의 〈Untitled from Marilyn Monroe〉는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대중매체와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아이콘’의 본질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시각적 논평이다.


1962년 8월, 마릴린 먼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직후 워홀이 제작한

이 실크스크린 작품은 예술의 독창성, 유명인 숭배,

대량생산의 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N0729_003.jpg 앤디 워홀, Untitled from Marilyn Monroe, 1967


이 작품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의도적인 기계적 복제와 그 결함에 대한 노출이다.

워홀은 1953년 영화 <나이아가라>의 홍보용 스틸 사진을 차용하여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반복적으로 인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위적인 색상 겹침, 인쇄 불균일, 번짐, 빈 공간과 같은

‘결함’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노출시킨다.

이는 완벽한 복제를 지향하는 산업 사회에 대한 풍자이며,

예술가의 손길이 최소화된 비개인적 생산 방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워홀은 “같은 이미지의 반복이 어떻게 그 이미지를 변화시키는지”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대중이 익숙하게 소비하는 이미지가 무수히 반복되면서

오히려 그 본질이 왜곡되고 공허해지는 현상을 포착한 발언이다.


9.jpg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Shot Sage Blue Marilyn)’. 1964년


둘째, 비자연적이고 인공적인 색채의 사용은 먼로의 이미지를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워홀은 이 작품에서 ‘인공적인’ 색상이라 설명한 비상징적 색채를 사용한다.

먼로의 피부는 푸르스름한 색으로, 입술은 선명한 오렌지색으로 표현되며,

배경은 강렬한 단색으로 채워진다.


이는 현실의 재현을 거부하고,

그녀의 이미지가 영화 스틸이라는 2차 매체를 통해

이미 가공된 상태임을 강조한다.

동일한 얼굴이지만 색조합에 따라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정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정체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소비되는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재구성될 수 있는 ‘상품’에 불과함을 드러낸다.


9999.jpg 골드(gold) 마릴린 먼로/Gold Marilyn Monroe (1962)/실크 스크린


셋째, 이 작품은 세속화된 종교적 아이콘으로서의 유명인을 보여준다.

워홀은 먼로의 초상화를 화면 가득 크게 배치하여 마치 성화(聖畵)를

대하는 것처럼 관객을 응시하게 한다.

특히 그가 1962년 먼로 사망 직후 제작한 〈Gold Marilyn Monroe〉는

배경을 황금색으로 채워 비잔틴 성상화를 연상시키며,

현대 사회에서의 유명인 숭배가 종교적 광신을 대체했음을 비판한다.


〈Untitled from Marilyn Monroe〉에서도 반복되고

평평해진 먼로의 얼굴은 점점 생기를 잃고 무표정한 가면으로 변해간다.

이를 통해 매체에 의해 창조되고 소비되는 ‘마릴린 먼로’라는 페르소나와

그 뒤에 존재했던 실존 인물 노마 진 베이커 사이의 단절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앤디 워홀의 〈Untitled from Marilyn Monroe〉는

화려한 팝아트의 외피 안에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평을 담아낸 작품이다.

실크스크린이라는 기계적 기법, 충격적인 색채, 무한 반복을 통해

그는 예술의 독창성과 진정성에 대한 신화를 해체하고,

대중매체가 인간의 감정과 취향을 어떻게 표준화하고

소비하게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을 바라볼 때,

관객은 마릴린 먼로라는 한 여성의 초상을 넘어,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이미지와 아이콘을 무비판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된다.


<앤디 워홀의 철학>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나는 안맞는 장소에 맞는 물건으로,

그리고 맞는 장소에 안 맞는 물건으로 있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이 둘 중 하나가 될 때 사람들은 당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거나,

침을 뱉거나, 당신에 관해 나쁜 기사를 쓰거나, 당신을 두들겨 패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면 당신이 ‘뜨고 있다.

그러나 안맞는 장소에 맞는 사람으로 있거나,

맞는 장소에 안 맞는 사람으로 있는것은

항상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게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나를 믿어라.

나는 맞지 않는 공간에 맞는 인간으로 있고,

맞는 공간에 안 맞는 인간으로 있다가

지금의 내 지위를 얻은 사람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222.jpg




Marilyn Monroe In "River Of No Return"

https://youtu.be/dLzeHkEQe9g?si=14ZOXP11B2hTz_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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