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본질을 향한 질주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화면이 붕 떠오른다. 페르디낭 호들러(1853-1918)의 <산 풍경>과 마주하면,

우선 이 압도적인 존재감에 압도당한다.

전통적인 풍경화처럼 관찰자를 끌어들여 먼 풍경을 바라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의 전면부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초상처럼 눈앞으로 불쑥 다가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불려나와 응시당하는 느낌을 준다.

이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풍경을 감상하는 자가 아니라,

자연의 근원적 본질 앞에 선 존재가 된다.


1.png 페르디낭 호들러의 「산 풍경」1909


이 독특한 접근은 호들러의 고독한 예술적 여정에서 비롯된다.

그는 일찍이 부모와 형제를 잃은 불우한 유년을 보냈으며,

그의 작업에는 이러한 생의 덧없음과 대비되는 자연의 영원성에 대한 집착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스위스 알프스의 장엄함 속에서 자연을 단순한 모방의 대상이 아닌,

내밀한 정신세계와 우주의 질서를 투사할 수 있는 ‘평평한 표면’으로 보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고갱의 상징주의와 쇠라의 점묘주의를 접한 경험은 이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그에게 그림 그리기의 목적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이상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산 풍경>은 그 가능성의 결정체이다.


1 (1).jpg 페르디낭 호들러의 「산 풍경」1909


호들러는 이 작품에서 현실 재현의 모든 장치를 과감히 해체한다.

먼저, 르네상스 이후 풍경화의 기본 법칙이었던 원근법을 무시한다.

깊이감과 공간감 대신, 그는 산을 수평으로 층층이 쌓인 색채의 면들로 환원한다.

하늘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두 개의 초승달 모양 구름띠는 검푸른 산 정상과

연푸른 산중턱을 경계 짓지만,

이는 공간의 구분이 아니라 장식적이고 리드미컬한 평면 구획에 가깝다.

마치 일본 우끼요에(浮世絵) 판화에서 후지산을 평면적 색면으로 표현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는 그가 발전시킨 ‘병렬주의’ 화법의 정수로,

사물을 나열하고 대칭시켜 보이는 현상 너머의 본질적 질서를 드러내고자 한 그의 시도이다.


555.jpg 호들러, 니센, 1910


표현 기법 또한 특이하다. 그는 쇠라식 과학적 점묘법을 채용하되,

그 엄밀함을 따르기보다는 점 자체의 시적 표현력에 집중했다.

화면 아래쪽 초록의 경사면을 채운 수많은 점들은 빛의 흩어짐과

풀잎의 질감을 동시에 환기시키며, 마치 시각적인 진동을 일으킨다.

이 진동은 관람자의 시선을 산기슭에서 산 정상으로 서서히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정상에 이르러서야, 드넓고 고요한 푸른 색면에서 시선은 비로소 휴식을 취하게 된다.

세부 묘사는 모두 생략되었지만,

이 점과 색면의 조화는 산의 위엄, 공기의 맑음,

정적의 깊이를 세부 묘사 이상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07_At_the_Foot_of_Mr._Saleve.jpg 살레브산기슭에서 At the Foot of Mr. Saleve


<산 풍경>은 단순한 산의 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호들러가 자연의 근본 구조에서 추출한 기하학적 추상에 가까운 ‘상징’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예전 그림이 싸우는 말, 누드모델, 일화를 그리는 데 그쳤다면,

이제 그림은 본질적으로 어떤 질서 아래 모인 색채로 뒤덮인 평평한 표면이 되었다”는

모리스 드니의 선언으로 이어지며, 20세기 추상미술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다.


11_Lake_Thun_Landscape.jpg 툰호수풍경 Lake Thun Landscape


그는 자연의 외피를 벗기고 그 안에 숨겨진 영원한 형태와 정신을 찾고자 했던 선구자였다.

호들러의 산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어떤 산과도 다르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저 평평한 푸른 면과 리드미컬한 구름띠 앞에 서면,

오히려 우리가 지금까지 ‘산’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단지 피상적인 인상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산 풍경>은 풍경화의 관습을 뒤흔든 실험적 결과물이자,

자연의 장엄함을 순수한 형태와 색채의 합주로 승화시킨,

깊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12_Landscape_on_Lake_Geneva_c.1096.jpg 제네바호수의풍경



https://youtu.be/oCpk8U3apBc?si=IcGbmwwftp7hRSq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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