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12월의 끝은 언제나 이상한 시간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세상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거리는 여전히 반짝이지만,
그 빛은 이제 지나간 축제를 추억하는 듯 희미하고,
사람들은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시간을 천천히 녹인다.
바로 그 무렵, 우리는 새해를 기다린다.
아직 오지 않은 한 해를,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그 기다림을 가장 오래도록 그려 온 화가들은 북유럽 사람들이다.
피터 브뤼헐은 눈 덮인 마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겨울은 춥지만,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의 〈눈 속의 사냥꾼〉에서 사냥꾼들은 지친 발걸음으로 언덕을 내려오고,
마을 사람들은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불 피우는 여인, 맥주를 나르는 남자, 아이들을 부르는 어머니.
그 모든 작은 움직임이 한데 모여 따뜻한 숨을 내뱉는다.
연말연시는 이렇게, 추운 바깥과 따뜻한 안쪽이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 18세기가 되자, 새해는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스웨덴의 페르 힐레스트룀은 1779년 스톡홀름 궁전의 새해 전야를 그렸다.
샹들리에 아래에서 귀족들은 춤을 추고, 군복을 입은 남자들은 잔을 부딪치고,
여인들은 부채로 얼굴을 가린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지만, 실내는 촛불로 가득하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새해가 단순한 날짜의 변경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도 이렇게 만나자”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다짐.
19세기를 지나 20세기 뉴욕으로 오면,
새해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모자 쓴 남자들, 털코트를 입은 여자들, 종이 뱀이 하늘을 날고,
경찰이 웃으며 휘파람을 분다.
아직 ‘볼 드롭’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한데 모여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부자도 가난뱅이도, 뉴요커도 이민자도,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산다.
그리고 자정에 불꽃이 터진다.
불꽃놀이는 사실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시작되자 화가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퓨처리스트 자코모 발라는 불꽃을 선으로 쪼개 하늘을 찢었고,
호안 미로는 색색의 점과 별을 뿌려 밤을 꿈처럼 만들었다.
그들의 캔버스 위에서 새해는 더 이상 시계의 숫자가 아니라,
한순간에 터져서 사라지는 빛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나는 매년 12월 말에 이 그림들을 다시 본다.
브뤼헐의 마을 불빛, 힐레스트룀의 촛불, 슬론의 거리 불꽃, 미로의 꿈결 같은 폭발.
그것들은 모두 같은 것을 말한다.
한 해가 가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또 한 번 새로 시작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증거라고.
그러니 올해도, 창밖이 아무리 차가워도,
시계가 12시를 향해 천천히 가고 있더라도,
우리는 안심해도 좋겠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불을 피우고, 누군가는 잔을 들고,
누군가는 하늘에 빛을 쏘아 올리고 있을 테니까.
그 모든 작은 빛들이 모여,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밝혀줄 테니까.
새해는,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