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매달 첫째 주가 되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월세를 보며
서민들은 큰 한숨을 내쉰다.
관리비까지 총 백만 원이 조금 넘는 돈.
그것은 한 달 동안 출근길 지하철에서 흔들리며,
사무실 형광등 아래서 허리를 굽히며,
때로는 야근하며 모은 노동의 대가 중 가장 큰 몫이다.
우리는 막연히 그 돈이 건물주 아저씨의 주머니로,
혹은 부동산 회사의 계좌로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돈이 우리 동네 어딘가에서,
이 나라 어딘가에서 다시 돌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최근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낸 월세가 이 땅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경을 넘어 베이징으로, 뉴욕으로, 싱가포르로 흘러간다.
우리는 집을 빌려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글로벌 자본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던 셈이다.
10년 전쯤이었을까.
제주도가 중국 자본에 잠식되고 있다는 뉴스가 화제였다.
그때 우리는 약간은 남의 일처럼 그 뉴스를 소비했다.
'제주도는 어차피 관광지니까', '서울은 다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이미 서울 한복판을 향하고 있었다.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이 보유한 주택이 10만 호를 넘어섰고,
그중 73%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그 절반 이상이 중국 국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제 휴양지나 변두리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강남의 아파트를,
우리 동네 상가를 사들이고 있다.
나는 궁금해졌다.
한국 부동산 경기가 어렵다고 난리인데,
도대체 무슨 돈으로 그 비싼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는 걸까?
얼마 전 후배가 집을 사려다 좌절한 이야기를 들었다.
15억짜리 아파트에 청약했는데,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LTV니 DSR이니 하는 규제 때문에 그가 빌릴 수 있는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투기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은행 직원의 설명에 후배는 씁쓸해했다.
집 한 채 마련하려는 게 투기란 말인가?
그런데 옆 창구에서는 외국인이 같은 아파트를
전액 현금으로 매입하고 있었다.
그 돈의 출처는?
중국이나 싱가포르의 은행에서 빌린 돈이다.
여기 핵심이 있다.
우리나라 규제는 '국내 금융기관'의 대출만 들여다본다.
해외에서 빌린 돈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볼 수 없다.
결국 빚을 진 것은 같은데, 한국인은 위험한 차주가 되고
외국인 왕 씨는 건전한 현금 매수자가 된다.
이것이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온몸이 밧줄로 묶인 채 달리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 기가 막힌 건 '상호주의'의 실종이다.
경제학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개념이다.
자유무역의 기본 전제,
네가 문을 열면 나도 연다는 약속.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중국인은 한국 땅을 마음껏 살 수 있지만,
한국인은 중국 땅을 한 평도 소유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라 모든 토지가 국유라는 이유에서다.
싱가포르는 외국인에게 60%의 취득세를 물리고,
캐나다는 아예 외국인의 주택 매입을 금지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자국민 보호를 위해 장벽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인에게만 레드카펫을 깔고 환영한다.
과거 집값을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화가 급해서,
단기 경기 부양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고는 하는데
뭔가 이상하고 찝찝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다.
가장 답답한 건 이 모든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정권이 이 문제를 알고도 방치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단기적 경기 부양을 위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든,
중국 공산당의 동북공정 음모론이든
어떤 명분으로 했던지 간에
그것이 초래할 장기적 부작용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야당도, 여당도, 진보도, 보수도 마찬가지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기대했지만,
누구도 이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바꾸지 않았다.
이것을 법률 용어로 '입법 부작위'라고 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 직무유기!
국민의 주거권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 그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특권이란 특권은 악착같이 챙기고
쓸데없는 이념 논쟁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 결과 우리는 자기 나라 땅에서 글로벌 자본과
불공정한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더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 외국인 집주인의 먹튀다.
3억 전세를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들고 자기 나라로 사라져 버리면?
한국인 집주인이라면 추적해서라도 책임을 물을 방법이 있다.
하지만 외국인은 다르다.
승소해도 재산이 해외에 있으면 집행이 불가능하다.
인터폴을 동원할 만큼 큰 사기가 아니면 잡을 방법도 없다.
결국 서민의 전세금은 공중분해되고,
그들에게 한국의 전세 제도는 무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꿀통'이 된다.
우리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제도가 악용당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분노보다는 허탈함을 느낀다.
왜 아무도 이 이야기를 크게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이토록 무방비 상태로 글로벌 자본에 노출되어야 했을까?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상호주의 원칙의 법제화를,
투기 자본에 대한 징벌적 과세를,
외국인의 자금 출처 조사 의무화를.
이것은 외국인 혐오가 아니라, 최소한의 공정함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행히 22대 국회에서 총 8건의 부동산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김은혜 의원은 올해 8월에 외국인의 부동산 거래 방식을 기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법을 발의했다.
민생을 돌보지 않는 국회가 과연 통과시킬지는 모르겠다.
20년 뒤 서울은 누구의 도시가 되어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자기 나라 땅에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한 채
평생 월세를 내며 살아야 할까?
그 월세는 또 어느 나라로 흘러갈까?
정치가 해결해 주길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리가 질문하고, 공유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가 똑똑해져야 우리의 땅을, 우리의 삶을 지킬 수 있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월세를 보며,
이제는 그저 한숨만 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어디로 가는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