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어느 날 문득,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기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1층 선실에서는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는데,
갑판 위에서는 여전히 샴페인을 터트리며 축배를 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배를 타고 있는데,
누군가는 파티를 즐기고 누군가는 물에 잠겨가고 있었다.
2025년,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겉보기에 멀쩡해 보인다.
반도체 수출이 30퍼센트 가까이 증가했고,
K-방산은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경제 성장률은 1퍼센트 안팎이라고 한다.
나쁘지 않은 숫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숫자는 평균의 거짓말이다.
한쪽에서 30퍼센트 성장할 때,
다른 쪽은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 주변을 둘러보면 그 균열이 보인다.
대학 후배 중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연봉이 매년 오르고, 연말 성과급을 억대로 받는다.
반면 독립해서 카페를 연 다른 후배는 하루하루가 버겁다고 했다.
임대료는 오르는데 손님은 줄고,
인건비는 감당이 안 돼서 혼자 모든 일을 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회사를 다니는 게 나았어"라는 그의 한숨에서,
나는 이 나라의 80퍼센트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읽는다.
더 가슴 아픈 건 청년들이다.
80만 명이 넘는 청년이 구직 활동을 아예 포기했다고 한다.
그들은 실업자로 집계되지도 않는다.
통계 밖으로 사라진 사람들. 왜 그럴까?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조선소는 사람이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하지만 대학을 나온 청년들은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아니, 갈 수 없다.
부모들은 청년들에게 대학에 가라고 했다.
70퍼센트가 넘는 진학률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원하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기업과 공기업은 바늘구멍이고,
중소기업은 낮은 임금과 불확실한 미래로 외면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집에서 기다린다.
공무원 시험을, 대기업 공채를, 기적 같은 기회를.
그렇게 청춘이 멈춰 있다.
기업들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삼성도, 현대도, SK도 공장을 해외로 옮긴다.
그들을 욕할 수만은 없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한국은 인건비가 비싸고 규제가 많으며 뻑하면 정치노조가 딴지를 건다.
반면 미국은 보조금을 쥐어주며 환영한다.
기업인이라면 당연히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우리다.
환율이 1,470원을 넘었다.
1998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니 수입 물가가 오르고,
서민들의 장바구니는 더 가벼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출 대기업에게는 호재다.
환율이 오를수록 그들의 수익은 늘어난다.
갑판 위의 파티는 더 화려해지고, 선실의 물은 더 깊어진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혁신의 부재를 떠올린다.
반도체 산업은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업과 자영업은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네덜란드는 스마트팜으로 세계 2위 농산물 수출국이 되었지만,
우리는 기득권과 규제에 막혀 혁신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전통시장을 보호한답시고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하지만,
정작 시장 상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이, 80퍼센트의 세계는 침몰하고 있다.
더 절망적인 건 이 배를 운전하는 사람들이다.
올해 우리나라 정부, 가계, 기업이 짊어진 빚을 모두 합한
'국가총부채' 규모가 6,200조원을 돌파했다.
국내총생산(GDP)의 2.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정치인들은 배가 기울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
"저쪽 때문이다", "네 탓이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
공정도 정의도 없다.
오직 진영 논리만 있을 뿐이다.
한쪽이 옳다고 하면 다른 쪽은 무조건 반대한다.
정책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누구 편에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국회는 싸움터가 되었다.
경제를 살릴 대책을 논의해야 할 시간에,
그들은 상대를 공격하는 데 혈안이다.
청년 실업 대책도, 중소기업 지원책도, 희토류 비축 계획도
진영의 이해관계에 걸리면 표류한다.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선장과 항해사는
서로를 배 밖으로 밀어내려 다툰다.
그것도 아주 유치하게.
승객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냉소한다.
"저 사람들이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로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걸까?
20퍼센트와 80퍼센트가 겪는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한쪽은 파티를 즐기고, 한쪽은 물에 잠겨간다.
경기 불황이 길어지는 가운데 연예인들의 수백억대 건물 매입 소식과
치솟는 부동산 가격 기사가 연일 쏟아지면서,
젊은 층이 체감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감정을 속으로 삼키거나 애써 드러내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최근에는 그 감정 자체를 하나의 '증상'처럼 이름 붙여 풍자하고 있다.
"거지통(痛) 온다", "서민통 온다"라는 신조어가 이를 상징한다.
같은 시대를 살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듯한 격차를
매일 마주하며 쌓이는 처참한 감정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침몰을 막을 방법을 찾기보다는,
각자 살아남을 구명보트를 찾는 데 급급하다.
이 배는 과연 항구에 닿을 수 있을까?
아니면 모두가 바다에 빠지기 전에, 누군가 방향을 바꿀까?
나는 갑판 위와 선실 아래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걸,
한쪽만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닫기를.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