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올해 들어 이상한 장면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코스피가 4200을 돌파했다.
역대 최고치다.
증권가는 연일 추포를 터뜨린다.
그런데 같은 시기 대기업들은 조용히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도 않는다.
내부적으로 아주 조용히 진행된다.
주식 시장은 오르는데 직원들은 회사를 떠난다.
지수는 사상 최고인데 일자리는 줄어든다.
이 모순적인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롯데 칠성음료가 창사 74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1950년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대상은 1980년 이전 출생자 만 45세 이상이다.
근속 15년 이상 직원에게는 기본급 24개월 치를 지급한다.
말 그대로 2년 치 월급이다.
롯데푸드도 같은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받았고,
롯데호텔과 롯데 면세점 역시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롯데그룹 전반이 동시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모습이다.
신세계 그룹은 더 충격적이다.
이마트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전사적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이마트는 한때 한국 유통의 상징이었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카트를 밀며 장을 보던 공간이었다.
그 익숙한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더 놀라운 건 대상 범위다.
희망퇴직 대상이 대리급까지 내려왔다.
입사 3년에서 5년 차 이제 막 업무에 익숙해진 직원들이다.
이들에게도 회사를 떠나라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조건은 월 기본급의 20개월에서 많게는 40개월치다.
최대 3년치에 가까운 금액이지만 재취업까지 걸릴 시간을 고려하면
결코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다.
유통업은 전통적으로 경기 방어주의다.
경기가 나빠도 사람들은 장을 봐야 한다.
먹고 사는 소비는 마지막까지 버티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통업은 늘 안전자산으로 분류됐고 주식시장에서도
안정적인 업종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데 지금 그 유통업이 무너지고 있다.
이건 단순한 실적 부진이 아니다.
내수 경제 전체가 얼어붙고 있다는 신호다.
현장을 가보면 바로 체감이 된다.
주말인데도 매장에 사람이 없다.
한때 계산대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던 풍경이 사라졌다.
홈플러스는 매각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때 롯데마트, 이마트와 함께 유통 빅3로 불리던 기업이다.
지금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필수 소비마저 줄이고 있다.
대형마트 대신 편의점에서 소량으로 사고, 할인 행사 때만 움직인다.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제철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철강업은 대표적인 기간 산업이다.
건설, 조선, 자동차의 기반이다.
철이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이 철강업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산 저가 철강의 공세가 거세다.
여기에 건설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수요가 급감했다.
LG화학도 인력을 줄이고 있다.
석유화학 부문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가격 공세가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
LG전자는 만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특히 TV 사업부가 어렵다.
한때 세계 최고였던 한국 TV 산업은 이제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주가와 고용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주가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기대를 반영한다.
기업이 비용을 줄여 이익을 늘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주가는 오른다.
문제는 그 비용 절감의 대상이 대부분 사람이라는 점이다.
인건비를 줄이면 단기 실적은 좋아진다.
주가는 오르고 투자자들은 환호한다.
애널리스트 보고서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는 회사를 떠난다.
그래서 주식시장과 고용 시장은 종종 정반대로 움직인다.
주가가 오를수록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유다.
여기에 기술 변화가 겹쳤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다.
롯데 멤버스는 희망퇴직 이후로 AI 도입 확대를 직접 언급했다.
고객센터는 챗봇이 대신하고 물류는 자동화 시스템이 처리한다.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사람이 할 일은 줄어든다.
이 모든 변화의 충격이 한 지점으로 모인다.
바로 45세 전후다.
45세는 어정쩡한 나이다.
은퇴하기엔 너무 이르고 재취업하기엔 늦었다고 여겨진다.
기업은 더 젊은 인력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 시기는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자녀는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고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이 크다.
부모님은 아프기 시작한다.
위아래로 부양 책임이 동시에 몰린다.
이때 소득이 끊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나이는 49.3세다.
50세도 되기 전에 회사를 나온다.
하지만 실제 은퇴 연령은 73세다.
49세에 회사를 떠나 24년을 더 벌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소득은 급격히 줄어든다.
대기업 연봉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2세를 넘기면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진다.
저축을 깨기 시작한다.
이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재취업 시장은 메마르다.
이력서를 넣어도 서류에서 떨어진다.
이유는 대부분 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 경력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에서는 능력이 너무 좋아 오래 버티지 않을 것 같다며 부담스러워하고,
같은 대기업에서는 나이가 많다며 서류에서 걸러진다.
결국 남는 길은 자영업이다.
치킨집을 열고 카페를 차린다.
하지만 자영업의 현실은 더 가혹하다.
생존율은 낮고 대부분은 몇 년 안에 문을 닫는다.
직장은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이고 정체성이다.
명함이 있을 때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명함이 사라지면 연락할 이유도, 만날 계기도 줄어든다.
그 순간 사람은 크게 흔들린다.
우울증의 원인이며 가족 전체가 흔들린다.
우리는 1997년도 IMF도 결국 극복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1997년은 분명한 신호가 있었다.
환율이 하루아침에 2배로 뛰었고, 기업이 줄도산했다.
모두가 위기임을 체감했다.
지금은 다르다.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코스피는 최고치를 경신한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백화점은 여전히 화려하다.
명품 매장에는 줄이 선다.
하지만 현장은 다르다.
조용히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소리 없이 사람들이 밀려나고 있다.
이 위기는 갑작스럽게 오는 폭풍이 아니라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 가깝다.
눈치채지 못하면 어느 순간 발밑이 잠긴다.
양극화는 이미 일상이 되고 있다.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주식을 가진 사람은 웃는다.
코스피가 오르면서 자산이 늘어난다.
하지만 월급만 받는 사람들은 다르다.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주가 상승의 혜택을 보는 사람과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같은 시기에 공존한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기 삶은 결국 스스로 지켜야 한다.
정부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회사를 끝까지 믿을 수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냉정한 준비다.
그리고 그 준비는 통보를 받은 뒤에 시작하면 이미 늦다.
어려움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준비된 사람에게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위기 때 현금을 가진 사람은 헐값에 나온 자산을 살 수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 그 차이는 큰 부의 격차로 이어진다.
결국 준비했느냐 아니냐가 부와 빈곤을 가른다.
지금이 바로 그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눈에 보이는 번영 뒤에 가려진 조용한 이별의 계절,
우리는 그 의미를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