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2024년 11월 29일, 대한민국이 술렁였다.
쿠팡에서 약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전체 인구의 65%에 달하는 규모다.
사실상 쿠팡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의 정보가 새어 나간 셈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유출의 원인과 사후 대응이었다.
조사 결과 이번 사태는 외부 해킹이 아닌 중국인 퇴사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지난 6월 24일부터 장기간 비정상적 접근이 이루어졌지만,
쿠팡은 무려 5개월이 지나서야 이를 인지했다.
보안 시스템의 장기 유효 인증키 방치라는
초보적인 실수가 부른 인재였다.
연간 41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최대 이커머스 기업이
보여준 보안 수준은 참담했다.
더욱 분노를 자아낸 것은 김범석 의장과 임원진의 안하무인한 태도다.
김범석 의장은 사과는커녕 입장문 하나 내지 않았다.
국회가 청문회 증인으로 불러도 출석을 거부했다.
10년째 국회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는,
'검은 머리 미국인'이자 '미국 상장사'라는 방패 뒤에 숨었다.
SK텔레콤의 최태원 회장은 유심 정보 유출 사태 때 직접 사과했고,
KT 대표도 이틀 만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쿠팡은 달랐다.
박대준 대표가 사임하자 미국 본사에서 법률 전문가인
해롤드 로저스를 임시 대표로 앉혔다.
한국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하며 청문회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이었다.
3,370만 국민을 우롱하는 꼬리 자르기에 불과했다.
쿠팡의 사업 구조는 더욱 문제이다.
매출의 90% 이상을 한국에서 올리면서도,
이익은 미국 모회사 쿠팡Inc로 향한다.
쿠팡Inc의 의결권 74%를 김범석 의장이 보유하고 있지만,
그는 2021년 한국 법인 의장직에서 물러나며 형식적으로 연결고리를 끊었다.
한국에서 돈을 벌지만 세금과 책임은 최소화하는 구조다.
게다가 정권별로 청와대 출신 인사 13명을 비롯해
정관계·법조계·언론계에서 61명을 로비 조직으로 영입했다.
쿠팡의 '강남 비밀 사무실'은 이들이 국회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김범석 의장을 국정감사에서 지켜내는 로비의 본거지로 지목됐다.
중대재해처벌법 회피도 교묘하다.
배송기사들이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반복되자,
쿠팡은 물류 자회사 구조로 책임을 분산시켰다.
형식상 대표를 교체하며 경영책임자를 바지사장으로 세우는 행태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실제 의사결정권은 미국 본사에 있지만,
법적 책임은 한국 법인 대표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비자들은 쿠팡을 떠나기 쉽지 않다.
분노한 고객들이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회원 탈퇴 운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막상 대체할 플랫폼이 마땅치 않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온다.
로켓배송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쿠팡의 독점적 지위를 실감한다.
국회 의원 한 명은 청문회에서 직접 쿠팡 탈퇴 절차를 시연하며
"보안 무지, 국민 무시"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탈퇴 후에도 갈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독점의 폐해다.
시장에서 한 기업이 독점화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사라지고,
기업은 책임감을 잃는다.
쿠팡이 온라인 쇼핑 시장의 약 25%, 새벽배송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사실상 독점 지위에 오른 순간, 소비자들은 인질이 되었다.
이미 길들여진 소비자는 그들의 의도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쿠팡은 이런 지위를 통해 막대한 영업상 특혜를 누리면서도,
3천만 명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조차 피해 배상을 거부한다.
이는 비단 유통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
한 정당이 의회를 독점하면 견제와 균형은 사라지고 의회독재가 출현한다.
쿠팡이 시장을 독점하고 소비자를 무시하듯,
독점 정당은 국민을 무시한다.
반대 의견은 묵살되고,
권력은 오만해지며,
책임은 회피된다.
삼권분립이라는 견제 장치가 무너지면,
마치 쿠팡에 대항할 경쟁자가 없듯이 권력에 대항할 수단이 사라진다.
국민들은 쿠팡 소비자처럼 '탈퇴하고 싶지만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된다.
국제 관계에서도 힘의 균형이 깨지면 전쟁이라는 재앙이 찾아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라.
러시아는 자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자 침공을 감행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보호 아래 있지 않고,
군사적으로 열세에 있다는 판단이 전쟁을 촉발했다.
마치 쿠팡이 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확보하자
소비자들의 개인정보 보호에 소홀해진 것처럼,
러시아도 힘의 불균형 속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무시했다.
반대로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로 균형을 이루었을 때는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호확증파괴(相互確證破壞,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라는
균형이 평화를 유지한 것이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분쟁도 마찬가지다.
양국 간 군사력의 균형이 깨지니까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태국의 일방적인 승리다.
쿠팡이 경쟁자 없이 시장을 지배하며 책임을 방치하듯,
국가도 견제받지 않는 힘을 가지면 폭력을 행사한다.
독점 기업의 오만함과 패권 국가의 침략성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견제와 균형의 부재다.
쿠팡 사태는 우리에게 묻는다.
편리함을 위해 독점을 허용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정치적 안정을 위해 일당 독점을 묵인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평화를 위해 힘의 균형을 포기한 국가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를.
독점 기업이나 독재 정치를 막으려면, 전쟁을 예방하려면,
독점화와 독재화가 안 되도록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경제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실효성 있는 규제, 징벌적 과징금 제도의 도입,
소비자 집단소송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정치에서는 여야 정당의 균형 정치, 삼권분립의 엄격한 준수,
언론의 독립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국제 관계에서는 동맹 체제를 통한 세력 균형, 국제기구의 중재 기능 강화,
다자주의 외교가 평화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깨어있는 감시가 필요하다.
쿠팡 사태에서 보듯, 우리가 편리함에 취해 경계를 늦추는 순간,
독점은 책임을 저버리고 오만해진다.
정치에서 무관심하면 독재가 찾아오고,
국제 질서에서 균형 감각을 잃으면 전쟁이 터진다.
쿠팡의 3,370만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단순한 기업 스캔들이 아니다.
그것은 독점과 불균형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였다.
우리는 이 경고를 경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