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그 기다림의 끝에서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은퇴 후 여행 유튜버를 할까도 생각했었다.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친구와 가기도 했고, 가족여행으로, 출장으로도 갔다.

심지어 해외 주재원으로 있었으니 여행이라면 이력이 붙었다.

동남아 전 지역은 물론 유럽과 미국도 참으로 많이 다녔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가족여행으로 괌 PIC 리조트를

1년에 무려 7번을 갔다 온 적도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좀 무리해서라도 갔었다.


그런데 많은 여행 유튜버 영상을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운동은 되겠다 싶었지만 한마디로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안 하기로 했다.

여행은 좋으나 이제는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늙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귀찮아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이번에 다녀왔다.

백두산이다.



연길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글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 땅이지만 우리말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나는 이미 백두산에 한 발짝 다가선 듯했다.

공항 밖으로 나서자 하얀 눈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겨울 백두산의 첫 인사였다.

가이드는 “삼대가 복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지만,

그 말 속에는 백두산 날씨의 변덕이 숨어 있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세 번을 가서 한 번도 못 보았다고 한다.

실제 가보니 사실이었다.

천지가 워낙 날씨가 기상천외하니 그럴 만도 했다.

출발 전 일주일 내내 일기예보를 들여다봤다.

눈, 눈, 눈으로 도배된 화면을 보며 한숨을 쉬었지만,

막상 가기로 한 이상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백두산은 일 년 중 73일 정도만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구름과 안개로 뒤덮이는 날이 많다는 뜻이었다.



북파로 오르는 날,

셔틀버스를 타고 산을 올랐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온통 백설이었다.

나무마다 하얀 눈꽃이 피어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눈가루가 춤을 추었다.

서파의 1,442개 계단보다는 수월하다고 했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이 가빠졌다.


젊었을 때는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천지가 저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버스를 타고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순간 숨이 멎었다.

움장함과 왠지모를 위압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천지는 볼 수가 없었다.

등산로가 빙판이 되어 등산금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지를 둘러싼 산봉우리들은 순백의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애국가에서 불렀던 그 백두산이 내 눈앞에 있었다.

수십 년간 그저 노랫말 속의 산이었던 백두산이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것이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이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나마 백두(장백)폭포를 보았으니 일 대 정도는 덕을 쌓았나 보다.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68미터 높이에서 쏟아지는 장백폭포는

영하 30도의 추위에도 얼지않고 우렁찬 소리로 나를 반겨 주었다.

폭포 주변의 바위와 나무들은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물보라가 얼어붙어 만든 거대한 고드름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겨울 백두산만의 장엄한 풍경이었다.


폭포를 본 후 유황 온천에서 피로를 풀었다.

영하의 날씨에 뜨거운 온천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뜨거운 온천수에 삶은 달걀과 옥수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별미로 통했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따뜻한 온천수에 손을 담그니 오랜 등반의 피로가 스르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눈 덮인 산과 뜨거운 온천의 대비가 백두산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내다봤다.

구름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갈 때는 그토록 궂었던 날씨가 돌아올 때는 맑았다.

백두산이 나를 제대로 맞아준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여행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치 않게 천지를 볼 수 있어서 사진으로 담았다.



사실 연길공항은 군사지역이라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는 곳이었다.

연길까지 가는 동안에는 비행기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어떤 노인분이 열었다가 승무원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2대 걸친 덕을 쌓았기에 용감하게 창문을 열었고 사진을 찍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천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지상에서 올려다본 천지와는 달리,

하늘에서 본 천지는 마치 하늘이 내려준 푸른 선물 같았다.

구름 사이로 반짝이는 호수, 그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눈 덮인 산봉우리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가운데 천지만이 깊고 푸른 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금지와 제약이 무색했다.

백두산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귀찮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여행이었지만,

백두산만큼은 달랐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의 시작점이자 한반도 산줄기의 뿌리였다.

백두대간이 이곳에서 시작해 지리산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은퇴 후 여행 유튜버는 되지 않기로 했지만,

백두산만큼은 누구에게든 추천하고 싶다.

비록 이동 시간이 길고, 날씨 운에 맡겨야 하고, 몸은 고단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감동이 있다.

백두산을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나이도, 피로도 잊혀진다.

백두산에서의 시간은 여행이 아니라 순례였다.

긴 인생을 살아온 내가 마침내 뿌리를 찾아간 시간이었다.

늙었다고 생각했지만, 백두산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가슴 뛰는 여행자였다.

귀찮아도 가길 잘했다. 백두산은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천지를 보는 데는 삼대의 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두산을 향한 간절함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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