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구스타프 클림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황금빛으로
뒤덮인 관능적인 인물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4분의 1가량이 풍경화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에로틱한 화풍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정적과 사색이 흐르는 그의 풍경화들.
오늘은 클림트가 자연에서 발견한 고요의 세계로 들어가 보려 한다.
공원, 평화로운 영혼의 안식처
<파크>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낸 녹음 속에서 클림트는 자연의 리듬을 포착했다.
작가이자 비평가였던 베르타 주커칸들은 클림트의 아름다운 풍경화들을
"채색된 슈베르트의 선율"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클림트의 붓질을 따라 봄의 선율을 타고 흐르는 슈베르트의 교향곡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나무들과 풀잎 하나하나가 악보의 음표처럼 화면 위에서 조화롭게 춤춘다.
카머성의 고요한 호수
<카머성의 고요한 호수>는 클림트 풍경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74×74cm의 정방형 캔버스에 담긴 호수는
하늘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땅과 물의 경계마저 모호하다.
화면을 가득 채운 푸른 물결은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일렁인다.
색정을 자아내는 그의 인물화와 달리,
이 풍경화는 보는 이를 자연의 일부가 되게 한다.
클림트는 여기서 자연과 인간이 가장 근접한 순간을 포착해낸다.
개양귀비밭의 포근한 혼돈
<개양귀비밭>을 마주하면 마치 '키스'의 배경을 펼쳐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캔버스 위에서 빨강, 주황, 보라, 초록의 색들이 서로 튀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점묘법처럼 찍어낸 색점들은 봄날의 들판을 추상적이면서도 생생하게 재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활기찬 봄의 풍경임에도 화면에는 깊은 고요와 정적이 흐른다.
아마도 그것은 클림트가 이 풍경 앞에서 느꼈을 내면의 평화 때문이 아닐까.
비 온 뒤의 풍경
<비 온 뒤의 풍경>은 세로로 긴 화면에 빗방울이 멈춘 직후의 촉촉한 공기를 담아냈다.
젖은 나무들과 대지, 그리고 막 개이기 시작하는 하늘.
클림트는 이 순간의 신선함을 섬세한 터치로 포착했다.
이 작품은 1900년부터 1916년까지 그가 소울메이트 에밀리 플뢰게와 함께
여름을 보낸 아터제 호숫가의 풍경 연작 중 초기작이다.
정식 풍경화가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자유로운 시선으로 자연을 담을 수 있었던 클림트.
그의 풍경화에는 스케치나 습작 없이 야외에서 직접 그린 즉흥성이 살아 숨 쉰다.
아터제의 섬
<아터제의 섬>은 클림트가 사랑한 아터 호수의 풍경이다.
에밀리 플뢰게와 함께 보낸 여름날,
두 연인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그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클림트는 이 섬을 수평선 가까이 배치하여 광활한 수면을 강조했다.
물결의 반짝임과 섬의 녹음이 만들어낸 조화는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넘친다.
1900년부터 1916년까지 매년 여름 이곳을 찾았던 클림트에게
아터제는 단순한 풍경이 아닌,
사랑과 평화가 깃든 영혼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아터 호숫가의 운터라흐의 집
<아터 호숫가의 운터라흐의 집>은 클림트 말년 풍경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주황색 지붕과 진녹색 수면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이 작품에서
그는 원근법을 거의 무시한 채 멀리 있는 집들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여러 집들의 몸체가 모여 마치 추상화처럼 화면을 구성한다.
후기로 갈수록 클림트는 순수한 자연보다 건물과 촌락을 주로 그렸는데,
이는 자연 속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쉴로스 카머공원의 가로수길
1912년 <쉴로스 카머로 가는 길>은 클림트가 여름휴가를 보낸 18세기 빌라의 정원을 담았다.
울창한 나무들이 만든 녹색 터널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형체가 불분명할 정도로 모호하게 표현된 나무들과 빛은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채색된 슈베르트의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
56년의 생애 중 마지막 10년의 열정을 풍경화에 쏟은 클림트.
그가 사랑했던 여인 에밀리와 함께한 아터제 호숫가의 모든 풍경은 평온하고 충만했다.
그의 풍경화는 한 폭의 그림에서 한 인간의 고뇌와 철학적 사유까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에로틱한 인물화와 고요한 풍경화.
이 극명한 대조 속에서 우리는 클림트라는 한 인간의 이중성,
혹은 완전성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