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한국 현대미술사를 불꽃처럼 스쳐간 화가, 최욱경.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눈이 시리다.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색채와 거친 붓자국에서,
삶 자체를 불살랐던 열정이 느껴진다.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5년,
고작 45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화가이자 스승이자 시인으로 살았다.
짧은 생애 동안 그는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배우고도,
한국의 자연과 단청 색채를 자기만의 언어로 녹여냈다.
‘규수 화가’라는 시대의 한계에 맞서 그는 뚜렷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여자이자 화가로서의 나의 경험”이 창작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1966년의 ‘화난 여인’이나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 같은 작품들을 보면,
한국과 미국 사이, 남성 중심의 미술계 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던
그의 정체성 고민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이 오로지 분노만은 아니었다.
1970년대 뉴멕시코의 넓은 대지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으면서,
그의 캔버스는 꽃과 산, 새처럼 생명력 넘치는 형태로 가득 찼다.
‘생의 환희’(1977)나 ‘만개’(1981) 같은 작품을 보면,
길가에서 주운 평범한 꽃잎이나 새 깃털,
부서진 나비 날개에서도 경이로움을 발견했던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거침없는 붓질과 춤추는 선들,
그 모든 것이 순수한 기쁨과 삶에 대한 탐닉으로 가득 차 있다.
여의도 아파트 작업실에 ‘무무당(無無堂)’이라 이름 짓고 벽에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라고 써붙였던 이야기는
그의 예술가적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허무함을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서 생을 불살라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에게 그림 그리기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존재론적 행위였고, 각각의 작품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화상이자 생의 증언이었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은 지금,
그의 작품은 서울과 뉴욕, 파리에서 재조명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비운의 천재 여화가’라는 꼬리표를 넘어,
우리는 이제 그가 남긴 격정과 환희가 공존하는 화폭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삶으로 예술을, 예술로 삶을 불태웠는지를 읽을 수 있다.
최욱경의 그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으로 스스로를 불태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