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신설되었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이다.
이 법의 취지는 숭고하다.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의 남용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 중 일부가
바로 그 법이 금지하는 행위의 주체가 되어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깊은 모순을 드러낸다.
김병기 의원의 경우, 보좌진에 대한 폭언과 인격 모독이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야근을 강요하고, 사소한 실수에도 고성을 지르며,
보좌진을 소모품 취급했다는 증언들이 있다.
강선우 의원은 보좌관들에게 업무 시간 외 사적 심부름을 강요하고,
휴일에도 수시로 연락해 업무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으로 장관 후보에서 낙마했다.
현직 국회의원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최초의 사례라는 불명예를 남긴 것이다.
이혜훈 전 의원의 경우는 더욱 충격적이다.
현재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지명된 이혜훈 전 의원은 보좌진에 대한
과도한 업무 지시와 언어 폭력 문제에 더해,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시절 구의원들에게 조직적 괴롭힘을 자행했다.
손주하 서울 중구 구의원은 어제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이 전 의원으로부터 1년 반 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했으며,
임신 중에도 괴롭힘을 당해 유산 위기까지 겪었다고 폭로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례도 있다.
박완주 전 의원은 보좌관 성추행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었다.
근로자를 보호해야 할 국회의원이 오히려 보좌진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갑질을 넘어 범죄 행위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들만이 아니다.
일부 의원들은 보좌진의 개인 시간을 침해하고,
가족 행사에 동원하며,
선거 운동 기간에는 법정 근로시간을 무시한 채 무리한 업무를 강요해왔다.
어떤 의원은 보좌진의 실수에 물건을 집어던지고,
어떤 의원은 심야에 술자리를 강요하며,
또 어떤 의원은 보좌진의 사생활까지 간섭했다는 증언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행태가 더욱 악랄하고 추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을 만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법의 취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사무실에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위선의 극치다.
법을 만들 때는 "근로자 보호"를 외치면서,
막상 자신이 고용한 보좌진에게는 그 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권력의 오만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강선우 의원의 낙마는 이러한 위선에 대한 사회적 심판이었다.
장관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오르려던 순간,
그가 보좌진에게 저질렀던 갑질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현직 의원이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상징적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해도 약자를 억압한 과거는 결국 드러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혜훈 전 의원도 계속 터져 나오는 폭로에 낙마가 예상된다.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들은 의원의 갑질을 고발하기 어려운 구조적 취약성에 놓여 있다.
정치권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한 번 문제를 제기하면 경력에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있고,
다음 선거에서 해고될 위험도 크다.
이러한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의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구조적 약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갑질을 지속해온 것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권력자들의 위선을 가리는 포장지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진정한 변화는 법의 제정이 아니라 법을 만드는 사람들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사무실부터 직장 내 괴롭힘 없는 공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만든 어떤 법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