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조지 오웰은 글 쓰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나를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그런 따위의 욕구다."
이기심이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라고 그는 단언한다.
사람들 대다수는 서른 살 쯤이면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뿐인데,
끝까지 제 삶을 살아보겠다는 고집 센 인간들이 있다.
작가는 바로 이 부류다.
나 역시 오랫동안 내 삶을 살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정치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담기조차 싫어하는 계기가 있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국회의원과 장관,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며
권력에 눈먼 자, 탐욕에 미친 자,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자 등
그들의 가장 추악한 본성을 직접 목격했다.
그 판은 파렴치가 기본이었고, 위선과 거짓은 일상이었다.
나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
그곳에서 썩은 냄새를 버틸 힘이 없었던 나는
남들이 그토록 원하는 권력을 뒤로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정치에 '정'자도 듣고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20년도 넘게 흘렀고,
우리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시국을 토로할 때면
다시 그 판에 나서지 않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최소한 어른의 역할은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이리도 더럽고 추악하다면 그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물론 당사자인 정치인에게 첫 번째 잘못이 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인생 선배로서
최소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쓰기 싫어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최소한 답답한 마음에 위안을 받을 수 있으니까.
오웰이 말하는 네 번째 동기,
정치적 목적이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그는 단언한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오웰의 글쓰기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태도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작가도 한 시대에 포함되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난센스이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전체주의·민주주의에 관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그 뚜렷한 목적의식에 그저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는 글의 소재를 늘 현실의 삶과 사회문제 속에서 선택했다.
영국 일간지 '트리뷴'에 근무하며 매주 칼럼을 썼다.
때론 세 편이나 네 편이 한꺼번에 실리기도 했다.
그에게는 그만큼 쓸 문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이다.
주제의 폭은 넓되, 목표는 뚜렷했다.
평등, 진실, 전쟁, 미래, 삶, 표현의 자유까지...
오웰은 말했다,
“내가 만약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다면 정치와 무관한 글을 썼을 것”이라고.
그의 거침없는 목소리는, 곧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플라톤은 경고했다.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국민들에게 큰 징벌을 내리는데,
그것은 국민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지배자가 되고
우리가 그 사람의 지배를 받는 불행을 가져온다고.
정치는 사회라는 전체 조직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기 위한 신성한 권리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속에 담긴 의미를 우리는 안다.
권리는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지탱시켜야 하는
의무의 범주에 깊이 들어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여러 모임에서 삼삼오오 모이는 담론의 자리에서는
모두가 정치평론가며 정치전문가이다.
술 한 잔 곁들여지면 자기 논리로 더 깊고 진지한 논쟁에 가세하면서
국가와 사회 상황을 진단하고 추론적 예단까지 시원하게 내놓는다.
그런데 그 관심이 정작 정책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정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며
나 개인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웰은 고백한다.
"글을 쓴다는 건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결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나 역시 그 귀신에게 끌려다닌다.
무관심은 최악을 불러온다.
국민을 섬기는 품격 있는 정치,
준엄한 자기 성찰을 통한 깨끗한 정치는 유권자가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정치적인 글을 쓰는 이유다.
순전한 이기심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쓰기 싫어도 쓴다.
답답한 마음에 위안을 받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