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어느 시대나 정치는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정치판은 차악을 넘어선 ‘진흙탕’ 그 자체다.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선우 의원과 김병기 의원의 녹취록 유출 사건은
그 진흙탕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보의 유출을 넘어,
정치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비정함과 파렴치함의 극치를 상징하고 있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와 타협,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헌신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기저에는 오직 ‘나만 살면 된다’는
처절한 생존 본능과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려는 비열한 계산만이 가득하다.
현재 강선우 의원은 특별한 정치적 일정도, 준비 중인 청문회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 무방비한 상태에서 단둘이 나눈 내밀한 대화가 세상 밖으로 던져진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녹취를 직접 유출한 당사자가 대화의
한 축이었던 김병기 의원 본인이라는 점이다.
김 의원은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 장남, 차남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이 각종 의혹에 휩싸여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과 해명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동료의 비밀을 팔아 자신의 위기를 덮는 ‘물타기’였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
이것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녹취록이 공개된 시점 또한 지독하게 계산적이다.
김 의원의 비리 의혹이 절정에 달했을 때,
대중의 이목을 분산시키기 위해 가장 자극적인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지도부에게는, 아니 대통령에게도
'니들 봤지? 강선우 녹취파일 말고도 또 있어.'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결국 김병기의 전략은 적중했다.
실제로 녹취가 공개되자마자 여론의 초점은
김병기에서 강선우로 급격히 옮겨갔고,
민주당에선 침묵만 흐른다.
원내대표와 통화를 안한 국회의원이 있을까?
나와 통화한 것도 녹취 파일을 김병기가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입을 닫게 만들고 있다.
진실을 가리기 위해 또 다른 논란을 만드는 이 지독한 기술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자, 정치를 희극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정치판이 ‘더럽다’고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부패가 존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뢰라는 인간 사회의 최소한의 가치마저
정치적 이득을 위해 거리낌 없이 배신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희생양이 되고,
사적인 대화가 권력 유지의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에서 국민은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그것도 "살려 달라"고 애원한 동료 의원에게 뒤에서 난도질을 한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진흙탕 싸움을 구경만 해야 하는가.
정치가 개인의 안위를 위한 방패막이가 되고,
상대의 약점을 잡는 ‘녹취 정치’가 판을 치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더러운 정치판을 정화하는 것은 결국 깨어 있는 시민의 시선이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타인을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
이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