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보안법 시대

주절주절

by 제임스

과거의 한국은 말 한마디가 목숨을 좌우하는 시대였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이 군사 쿠데타 직후 반공법을 제정하며

국가보안법(국보법)의 뼈대를 세웠다.


"국가 재건 과업의 제일 목표인 반공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공산 계열의 활동을 봉쇄하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자유를 확보하겠다."


이 명분 아래,

제4조는 반국가 단체에 이로운 언동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법은 단순한 반공 도구가 아니었다.

일상 속 우발적인 말실수까지 칼날을 겨누며,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도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막걸리보안법'이라 불렀다.


나 역시 대학시절,

학교 앞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취기와 객기가 발동하여 승객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하였다.


"여러분, 광주사태의 진실을 아십니까?

지금 정권은 살인마 독재정권입니다!"


그날로 바로 경찰서 정보과에 끌려가 취조를 받았고,

아버지가 달려와서 그렇게 빌었지만

결국 유치장에서 나는 열흘을 보내야만 했다.


왜 막걸리 보안법일까?


대부분의 사건이 술에 취한 상태나 흥분한 순간에 저지른 실수였기 때문이다.

막걸리 한 잔에 주둥이가 헐거워지면,

그 헐거움은 곧 쇠고랑으로 이어졌다.


피카소 찬양하면 반공법 위반 1969년 6월 9일자 <경향신문>


생생한 사례를 보면,

그 시절 누군가 "소련 놈과 미국 놈의 책동에 의한 것"이라고 중얼거리다 끌려갔다.

술자리에서 북한 노래를 흥얼거린 사람도 예외 없었다.

철거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소리친 사람,

예비군 훈련에 지쳐 "수틀리면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라고

투덜거린 이들 모두 국보법의 그물에 걸렸다.

한 타이어공장 노동자는 술자리에서

"이북은 김일성이가 대통령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북괴에 동조하였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가장 안타까운 건 강원도 산골 농부의 이야기다.

막걸리 한잔 걸친 강원도 산골의 농부는 술김에 ‘통일 대박’ 아이디어를 말했다.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

박근혜를 김정일에게 시집보내면 되는 거야!”


그다음 날 농부는 정보기관으로 끌려갔다.

키워드 ‘박근혜’ ‘김정일’이 들어간 농담의 끝은 참혹했다.

농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3년이란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농부는 출소 후 한마디를 더 했다.


“취중에 농담도 못 하냐! 농담 한마디 한 것 가지고 몇 년씩 징역을 살리는

이놈의 세상이 김일성보다 못하면 못하지 나은 게 뭐야!”


농부는 또 정보기관으로 끌려갔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다시 몇 년의 징역살이를 했다.



이 농부처럼,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취중진담으로 인생을 망쳤다.

법은 의도를 따지지 않았다.

말의 무게가 자유의 무게를 압도했다.


이 법은 단순한 억압이 아니었다.

공포를 심어 자발적 침묵을 유도했다.

사람들은 술자리에서조차 입을 다물었고, 이웃을 의심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짓누르며, 표현의 자유는 사치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은 '국민의 자유를 확보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빼앗는 모순.

막걸리보안법은 그런 시대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2024년 전 민주당 강선우의원(1억 공천 뇌물 의혹)은

국회 질의에서 자신에게 "미친 여자다!"라고 한 발언과

임현택 전 의사협회 회장이 과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조규홍 말을 믿느니 김일성 말을 믿겠다"고 했던 발언 등을 언급하며 질타했다.

임 회장은 자신의 발언이 "국민이 가진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고

사과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 회장은 이 발언으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는 대통령에게 막말을 해도 처벌 받지 않는다.



왜 우리의 헌법 조항은 그대로인데

그때는 안되고 지금은 되는가?

왜 우리의 법은 그대로인데

누구는 안되고 누구는 되는가?


그때는 법으로 말을 못 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패거리 정치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을 못 한다.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반대 의견은 '적'으로 낙인찍힌다.

소셜 미디어에서 한마디 하면 집단 린치가 시작되고,

정치적 패거리들이 몰려와서 입을 틀어막는다.

과거의 술자리 쇠사슬이 사라졌어도,

사회적 압박의 그물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한쪽에선 국가보안법 철폐를

또 한쪽에선 ‘반중 시위’를 예로 들며 특정 국가와 국민을 모욕하면

징역형(5년)으로 처벌할 수 있는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황당하게도 이 법안이 기존 형법의 원칙인 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수사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 가능한 친고죄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이 두 원칙을 배제해,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기관이 임의로 수사 및 기소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악법 중에 악법이다.


한마디로 간첩법과 국가보안법은 폐지시켜 진짜간첩은 활동을 보장해 주고,

반 공산주의(CCP OUT)’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현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고 국민들을 숙청하겠다고 한다.

진정한 내로남불이며, 구시대의 탄압정치로의 회귀이다.

막걸리 보안법을 뛰어넘는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와 탄압에 맞섰던

민주당의 철학과 역사는 어디로 갔는지 안타깝다.


우리는 여전히 말의 자유를 꿈꾼다.

하지만 그 자유는 막걸리 한 잔처럼,

취기 속에서만 피어나는 환상일 뿐인가?

시대가 변해도, 말의 무게는 변함없다.

자유를 지키려면, 먼저 입을 열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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