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담긴 요리의 시간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때로는 뜻밖의 주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요리와 음식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그랬다.

화려한 풍경화나 웅장한 역사화 사이에서,

주방의 소박한 일상이나 요리사의 손길을 담은 그림들은 묘한 울림을 준다.

마치 먼 시대의 부엌에서 풍기는 따뜻한 김 같은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요리사를 향한 유머러스한 시선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작품들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웃음을 자아낸다.

그의 1570년 작품 '요리사'는 주방 도구와 음식으로만 구성된 초상화로,

냄비와 프라이팬이 모자와 옷을 이루고 야채와 고기가 얼굴을 형성한다.


Giuseppe Arcimboldo의 요리사 (1570)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을 거꾸로 뒤집으면 전혀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위아래를 뒤집으면 '채소 기르는 사람'에서 '요리사'로, 혹은 그 반대로 변신한다.

음식을 기르는 사람과 음식을 만드는 사람,

그 연결고리를 하나의 그림 안에 담아낸 기발한 발상이다.


아르침볼도는 과일, 꽃, 동물, 사물 등을 이용해

사람의 얼굴을 표현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유명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3대에 걸쳐 궁정화가로 활약했다.



33.jpg Giuseppe Arcimboldo, 과일 바구니가 있는 뒤집을 수 있는 머리 , 1590.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요리와 요리사라는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고 창의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노동의 손으로 얻은 한 끼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시메옹 샤르댕의 '순무를 다듬는 여인'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전한다.

1738년 작품 속 하녀는 잠시 멍하니 앞을 응시하며,

쉼 없이 일한 탓에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다듬어야 할 식재료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3.jpg 순무를 다듬는 여인 [The turnip cleaner], 1738


샤르댕은 정물화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그린 인물화에도 같은 진실함이 담겨 있다.

1699년 파리의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색채를 섞고

칠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을 익혔고,

이 화법은 후에 그의 작품에서 역력히 흔적을 남겼다. 그

가 그린 여인의 표정에는 고단함이 묻어나지만,

동시에 일의 가치에 대한 존중도 느껴진다.


96-012342.jpg 초라한 메뉴와 식기류 Menu de maigre et ustensiles de cuisine, 1731


나는 이 그림 앞에서 생각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뒤에는 얼마나 많은 손길이 숨어 있을까.

재료를 다듬고, 씻고, 썰고, 불 앞에서 땀 흘리는 누군가의 시간.

샤르댕은 그 시간의 무게를 화폭에 담았다.


어둠 속 주방의 변화

네덜란드 화가 헤리트 도우의 '당근을 다듬는 여인'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읽힌다.

화면 가득 채워진 식재료와 여인의 몸집만큼 커다란 그릇에서

해야 할 일의 양과 무게가 느껴진다.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의 얼굴을 밝게 처리해서

뒤로 보이는 넓고 어두운 공간과 극한의 대조를 꾀한 구성이 여인의 노동을 더 부각시킨다.


Woman-Peeling-a-Carrot-Gerrit-Dou-Oil-Painting.jpg 헤리트 도우<당근을 다듬는 여인>1646


17세기까지만 해도 주방은 어둡고 침침한 공간으로 그려졌다.

요리는 귀족들이 즐기는 결과물이었지만,

그것을 만드는 과정은 하인들의 고된 육체노동이었다.


벨라스케스가 1618년경 그린 '그리스도가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 주방'에서도

음식을 준비하는 젊은 여성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어두운 주방에서 열심히 일해도 믿음에 충실한 방안의

여인들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며 주방의 이미지도 변했다.


66.jpg 벨라스케스, 마르다와 마리아집을 방문한 그리스도, 1618


19세기 미술작품 속 주방 분위기는 한층 자유롭고 유쾌한 장소로 바뀌었다.

비베르의 '놀라운 소스'에서는 남자 요리사가 성직자와 함께 주방에서 음식을 맛보고 있다.

요리가 힘겨운 노동이 아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라고 느끼게 한다.


99.jpg Jehan Georges Vibert - The Marvelous Sauce, ca. 1890


음식 넘어의 메시지

16세기 스페인 화가 피테르 아르첸의 '요리사' 그림도 흥미롭다.

이 작품에서 요리는 맛과 모양의 조화가 아닌

요리사의 힘과 노동의 결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당당한 자세의 요리사와 풍족한 식재료들.

힘과 풍요가 공존하는 화면이다.


요리사 , 1559.jpg 피테르 아르첸, 요리사 , 1559


이 작품들을 보며 깨닫는다.

요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에 따라 변했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인간의 삶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17세기의 어두운 주방에서 19세기의 밝은 주방으로,

고단한 노동에서 기쁨의 창조로. 요리는 단순히 먹을거리를 만드는 행위를 넘어,

시대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20세기에는

파블로 피카소는 단순히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음식을 탐닉한 미식가이기도 했다.

그의 예술과 창의력의 원천은 소박하지만 건강한 음식에서 비롯되었다.

아침 식사는 그의 예술 세계를 여는 신성한 의식이기도 했다.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는 단순한 에너지원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창조 행위의 발현을 돕는 매개체였다.


55.jpg 피카소, 등불 아래의 정물, 1962


피카소만의 독특한 색과 선, 조형은 어린 시절을 보낸 카탈루냐 산골 마을에서

보고 먹었던 느꼈던 야생의 식재료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그린 것이다.

싱싱한 동식물의 식재료가 선사하는 오색 창연한 색과 향에 매혹되어

이를 소재로 많은 정물화를 남기도 했다.

즐겨먹던 대구 뼈를 도자기 작품의 모티브로 삼기도 했다.


9999.jpg 피카소, 랍스터, 1949


보이지 않는 손길들

오늘 아침 내가 먹은 밥 한 공기, 점심에 마신 커피 한 잔 뒤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을 것이라고.

재료를 기르고, 수확하고, 운반하고, 다듬고, 조리한 사람들.

그들의 얼굴을 나는 본 적이 없지만, 화가들은 그들을 기억했다.


아르침볼도는 유머로, 샤르댕은 진실함으로,

다우는 대조의 빛으로,

비베르는 변화하는 시대의 기쁨으로 요리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 그림들 속에서 나는 요리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삶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는 예술임을 알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조용히 채소를 다듬고,

누군가는 냄비 앞에서 숨죽여 기다리고,

누군가는 새로운 레시피를 실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

언젠가 또 다른 화가의 화폭에 담겨 영원히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 저녁은 무엇을 요리할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요리하는 손과 그리는 손은 결국 같은 것이 아닐까.

재료를 고르고, 정성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

그 속에는 창조의 기쁨과 노동의 신성함이 함께한다.

화가들이 포착한 요리의 순간들은,

그래서 단순한 그림을 넘어 우리 모두의 일상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https://youtu.be/fBDhusstX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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