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우릴 갈라 놓을 때까지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존재였다.

산업혁명으로 돈방석에 앉으면서도 사랑 없는 결혼의 비극을 양산했으니 말이다.

에드먼드 블레어 레이튼(1852-1922)은 그 위선적 시대상을 날카롭게 포착한 화가였다.

그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결혼식 이면의 씁쓸한 진실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죽음이 우릴 갈라 놓을 때까지, 1878


그의 대표작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Till Death Do Us Part)'는

처음 보면 성스러운 결혼식 장면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뜩한 분위기가 감돈다.

제단 앞에 선 신부의 고개는 깊이 숙여져 있고, 주변 하객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모두가 환호하고 박수치고 축하해야 할 순간인데,

불쌍히 바라보는 여인들, 한심하게 고개를 젓는 할머니,

"뭐 저딴 게 다 있노?" 싶은 표정으로 수군거리는 당숙들,

그리고 "넌 저러지 마라"며 엄마에게 타이름 듣는 아이까지.


이 결혼식, 뭔가 심상치 않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신부 옆에서 콧수염을 기른 젊은 신사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가 서려 있고, 신부는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는 듯하다.

혹시 전 남친? 아니면 진짜 사랑했던 사람?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사랑과 전쟁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위장 이혼 후 노인이 죽으면 다시 재결합하는 시나리오까지 그려진다.


사실 이 작품은 1879년 로열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될 당시 원래 제목이 'L.S.D.'였다.

마약 LSD가 아니라 라틴어로 librae, solidi, denarii.

영국식으로 하면 파운드, 실링, 펜스. 우리말로 번역하면 "머니 머니 머니해도 머니"다.


지금 신부는 돈 때문에 자기 할아버지뻘 되는 노인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이들을 갈라놓으면 신부는 부자 미망인이 된다.


신랄하지 않은가?

결혼 서약의 가장 성스러운 구절을 이용해,

사실은 '빨리 죽어주세요'라는 암묵적 계약을 풍자한 것이다.


레이튼은 러시아 화가 푸키레프의 불평등한 결혼식 그림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만의 버전으로 재해석했다.

젊고 아름답지만 슬프기만 한 신부와,

부유하지만 여인을 오로지 자신의 편의를 위한 존재로만 여기는

노인의 명백히 불평등한 결합.


빅토리아 시대에는 이런 결혼이 드물지 않았다.

귀족 집안의 파산을 막기 위해,

혹은 신분 상승을 위해 젊은 여성들이 돈 많은 노인에게 팔려가듯

시집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현재, 우리 시대는 다른가?


신의 가호가 있기를, 1900


그의 다른 작품 '신의 가호가 있기를(God Speed!)'은 출정하는

기사에게 귀부인이 작별 인사를 하는 낭만적 장면이다.

기사작위의 수여식이나 전쟁에 나가는 기사에게 자신의 스카프를

건네 행운을 빌었다.

반짝이는 갑옷, 펄럭이는 붉은 망토, 빨간 스카프

기사도 정신의 정수가 담긴 이 그림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와 대조를 이룬다.

하나는 진정한 사랑의 이별을, 다른 하나는 거짓된 결합을 그렸으니 말이다.


군대 소집령 Call to Arms , 1888


'군대 소집령'은 레이튼의 잔인한 타이밍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막 결혼식을 끝내고 신부의 손을 잡고 나오는 신랑 앞에,

갑옷을 입은 전령이 나타나 소집령을 전한다.

신혼 첫날밤은 병영에서 보내야 할 판이다.

전령의 표정은 단호하고,

계단 위에 어지럽게 떨어진 꽃잎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축하의 의미였겠지만 이제는 묘하게 불길해 보인다.

가장 재미있는 건 신랑의 불끈 쥔 주먹이다.


"하필이면 오늘?"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마도 전쟁터로 갈지,

아니면 신부와 도망칠지 치열한 고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레이튼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과 가장 잔혹한 현실이 충돌하는 찰나를 포착했다.


에드먼드 블레어 레이튼은 단순히 아름다운 중세 풍속화를 그린 화가가 아니다.

그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꼬집은 풍자가였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사랑 없는 결혼의 끝은 과연 무엇일까?"


답은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에 다 나와 있다.

축복받지 못한 결합은 이미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https://youtu.be/cnQ-qCbJmsc




매거진의 이전글데이비드 포파의 ‘사라지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