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포파의 ‘사라지는 그림’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1980년대 뉴욕에서 태어나 현재 핀란드에 거주하는 데이비드 포파

자연, 지속가능성, 창의성이 어우러진 대규모 대지 벽화로 유명하다.

이처럼 자연, 지속가능성, 창의성을 조화롭게 융합해낸 작가는 없다.

포파는 자연 경관을 시각적으로 놀랍고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그의 작품은 지속가능성과 환경 의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지구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동시에 지구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Cap 2026-01-24 19-27-41.jpg 작업 중인 데이비드 포파


발트해의 얼음 위, 프랑스의 포도밭 길,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대 사막.

데이비드 포파(David Popa)의 그림이 펼쳐지는 곳은 전시장이 아니다.

그의 캔버스는 자연 그 자체다.

흙, 숯, 분필가루, 조개껍데기, 와인 침전물까지,

모든 재료는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하늘에서만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작품은

바람과 비, 조수와 계절에 의해 조용히 지워진다.

그의 예술은 완성에서 소멸까지를 하나의 선(線)으로 엮는,

지극히 유한한 생명을 가진 예술이다.


1 (2).jpg Fractured


"Fractured" 는 핀란드 남부의 여러 빙산 위에 설치된 작품 프로젝트이다.

흙, 숯, 그리고 물만을 사용하여, 짧은 시간 동안만 남아 있는

깨진 빙산 위에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드론 영상, 사진, 그리고 사진측량을 통해 작품들을 기록했으며,

한정판 프린트와 1/1 NFT(National Free Studio Project)를 통해

디지털 형태로도 만나볼 수 있다.


Cap 2026-01-24 19-14-39.jpg Fractured


이 프로젝트는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분쟁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으며,

이 분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분열된 모습을 더욱 부각시켰다.

프로젝트 진행 중 얼음이 예상치 못한 시점에 갑자기 갈라지면서,

작가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 고뇌했다.

지상에서는 혼돈 속에서 어떤 희망의 빛도 찾아볼 수 없겠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조각난 얼음들이 다른 어떤 시각에서도 포착할 수 없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절망과 혼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현실의 깨진 조각들을 어떻게 이어 붙여 완전히 새로운 모자이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작업은 결코 편안한 스튜디오에서의 사색이 아니다.

노르웨이 빙하에서는 위험한 크레바스 사이에서 4시간이라는 촉박한 시간과 싸워야 했고,

남핀란드의 해빙 위에서는 작품이 그려진 얼음판이 몇 시간 만에

떠내려가거나 갈라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팔레오 페인터(구석기 화가)’라 칭하며,

4만 년 전 동굴벽화를 그린 선조들과 같은 재료—숯, 황토, 갈아낸 조개—를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기법의 선택을 넘어, 인류 예술의 가장 원초적 본능으로의 회귀이며,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윤리적 선언이다.


DavidPopa_Still3.jpg


그가 그리는 대상은 ‘조건’이다.

얼음 위에 그려진 부서진 초상화 ‘Fractured’ 연작은 표면의 균열과 유빙의 이질감을

작품 내부의 선과 여백으로 삼는다.

이는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술 언어로 끌어안는 태도다.

그가 그리는 얼굴이나 손은 그 자체보다,

그 형상이 ‘출현하고 사라지는 시간과 공간의 조건’이 주제다.

완성의 순간은 그가 붓을 놓을 때가 아니라,

첫 물방울이 그림을 적시거나, 파도가 형상을 스쳐 지나갈 때 찾아온다.


이 모든 덧없음은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예술의 본질로 부를 것인가?

소유할 수 있는 물질적 대상인가, 아니면 사라짐을 통과한 순수한 경험과 기억인가?

포파는 이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긴장감 그대로를 보여준다.

현장의 한시성과 디지털 기록(드론 사진, 영상, 한정판 프린트)의

영속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관객을 그 사이의 간극에 서 있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소멸하지만,

그 과정을 포착한 드론의 시선과 기록물을 통해 새로운 생태계로 재탄생한다.


그의 예술적 여정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근원적 질문과 궤를 같이한다.

‘Born of Nature’ 프로젝트에서 그는 태아처럼 땅속에 스민 신생아의 초상을 암반에 그렸다.

그는 작품의 모델이 된 갓난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가 이 신비로운 세계에 ‘태어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Cap 2026-01-24 19-22-36.jpg Born of Nature


사우디 알울라 사막에서는 유적지를 감싸는 듯한 100미터 크기의 거대한 손

‘Hands of Sands’를 통해 보존과 파괴의 양가성을 이야기했고,

프랑스 보르도의 포도밭에서는 땅의 힘을 상징하는 손과 송이를

와인 침전물로 그려 땅과 인간 생산활동의 연결을 노래했다.


Cap 2026-01-24 19-26-52.jpg Hands of Sands


이러한 작업들은 단지 장관을 만드는 것이 아닌,

우리를 자연 생태계의 일원으로 다시 자리 잡게 하는 의식과 같다.

그가 직접 고백한 것처럼,

그곳에서의 창작은 “마치 신의 심장 속으로 돌아간 것 같은” 경험이다.

화산 근처 위험한 곳에 땅속으로 웅크린 인물을 그리며,

그는 그것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존재 상태의 표현임을 깨달았다.

그에게 창작은 ‘하나의 기도’다.

데이비드 포파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비로소 ‘보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갤러리에서 완벽하게 조명된 작품을 응시하는 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하늘에서 바라본 한 장의 사진 속에서,

거대한 자연의 몸짓 위에 스민 인간의 흔적과,

그 흔적이 사라져 가는 애처로운 아름다움을 함께 보는 것이 ‘보는 것’일까?


그의 예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박제된 영원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과 함께 호흡하는 생명 그 자체에 있다고.

그가 바람과 비에게 붓을 내어주는 순간,

예술은 비로소 자연과 하나가 되고,

우리는 그 고요한 소멸의 시(詩) 속에서

우리 자신의 덧없고 소중한 존재를 반추하게 된다.



Cap 2026-01-24 19-28-29.jpg 엑소더스(Exodus) , 2020



03_p_david_popa_photography_david_popa_yatzer-1400x933.jpg 지구의 힘


11_s_inceptus_david_popa_photography_david_popa_yatzer-1400x2352.jpg 인셉터스



https://youtu.be/rm3JctfSd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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