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바꾼 화가, 메리 카사트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메리 커셋(Mary Stevenson Cassatt, 1844~ 1926)

1844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이 화가는,

인상파라는 남성 중심의 예술 운동 속에서 여성만이 포착할 수 있는 시선을 화폭에 담았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19세기 여성의 삶을 응시하는 하나의 선언이었다.


1.jpg 푸른 팔걸이의자에 앉은 소녀(Little Girl in a Blue Armchair), 1878


1878년 그려진 <푸른 팔걸이의자에 앉은 소녀>를 보면 카사트의 혁명적 시선이 드러난다.

소녀는 얌전하게 앉아 있지 않다.

팔을 뒤로 넘긴 채 편하게 다리를 벌리고,

마치 삶이 권태로운 어른처럼 무심하게 앉아 있다.

당시 여성과 어린이를 그릴 때 요구되던 '정숙함'과 '순종'의 이미지를 거부한 이 작품은,

커셋이 추구한 예술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녀는 여성을 관찰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시선을 가진 주체로 그렸다.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에 가족들이 극심하게 반대했지만,

커셋은 15세에 펜실베니아 미술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규 미술 교육과 전시에 제약이 많았기에

1866년 홀로 파리로 건너갔다.

여성에게 문이 닫혀 있던 학교 대신,

그녀는 유명 화가들의 개인 작업실을 찾아다니며 수업료를 내고 배웠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화를 모작하며 실력을 쌓았고,

1868년 살롱전에 첫 입선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2.jpg 마리 루이 듀랑 뤼엘 초상화, 1911


진정한 전환점은 1877년 에드가 드가와의 만남이었다.

드가는 그녀의 작품을 보고 인상주의 전시회에 초대했고,

1879년부터 커셋은 인상파의 핵심 일원으로 활동했다.

드가는 그녀를 남성 화가보다 더 확고한 시선을 가진 이로 평가했다.

그러나 커셋은 인상파 안에서도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남성 화가들이 포착한 거리와 카페의 풍경 대신,

그녀는 여성의 일상과 내밀한 순간에 집중했다.


여성들의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담은 그녀의 작품들은,

특히 어머니와 자식을 주제로 한 연작으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커셋이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끊임없이 모성 이미지를 그린 것은,

여성의 삶이 특정 역할로 제한되던 시대적 맥락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 속 어머니들은 단순히 경건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다.

일상의 피로와 응시,

그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의 층위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칸막이 관람석에서, 1878


커셋은 여성을 예쁘장한 들러리가 아닌 일상 속 주체로 세웠다.

<칸막이 관람석> 같은 작품에서 여성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인공이다.

오페라 관람석에 앉아 오페라글라스를 든 여성은 당당하게 무대를 응시한다.

같은 시기 르누아르가 그린 같은 주제의 작품과 비교하면,

시선의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3.png 르누아르, 특별관람석, 1874


20세기 중반 이후, 카사트의 회화는 재조명되었다.

인상주의 내부에서 간과되었던 여성 주체성의 형상화라는 관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새롭게 평가받기 시작했다.

카사트는 천박하지 않게 사회상을 꼬집었고,

야단스럽지 않으면서도 확실하게 시대를 지적할 줄 아는 계몽가였다.


그녀는 백내장으로 고생하면서도 15년간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여성이 바라보는 세계, 여성이 경험하는 일상,

여성이 가진 시선의 힘을 증명한 예술이다.

카사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누가 보는가, 누가 보이는가,

그리고 누구의 시선이 역사가 되는가?



https://youtu.be/Czsd13Mmc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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