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도대체 신은 이 친구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우연히 본 방송에서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프로필 란에 적힌 UDT, 배우, 유튜버, 미술작가라는 단어들을 보며 믿기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깨는 사람,
육준서(1996~ )
그중에서도 미술작가라는 직업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말이 하고 싶은데, 언어로는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린다.
어릴 적 모나미 볼펜 한 자루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던 소년은,
이제 트레싱지 여러 겹을 레이어드하고 뼈에 페인트를 부어 굳히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간다.
2014년 12월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해 2016년 UDT/SEAL을 수료하고
해군 폭발물처리부대에서 근무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2019년 전역 후 개인 전시회를 열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21년 '강철부대'로 대중 앞에 섰다.
과묵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겉모습 뒤 피아노 연주와 샌드백 치기라는 극과 극의 취미,
동양풍의 사이키델릭한 화풍. 그는 분류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은 그의 예술세계는
불안과 공포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다.
물건을 구기고 찢어 전시하고, 아이패드로 작업하면서도 설치미술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미술 비전공자로서 단번에 눈에 띄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편견을 가졌던 그는,
조안 미첼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보고 깨달았다.
예술은 설명이 아니라 감각이며, 증명이 아니라 존재라는 것을.
2024년 말,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tvN '아이 엠 복서'에 참가한 것이다.
복싱 수련 기간은 고작 8개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는 우승을 목표로 하루에
웨이트, 러닝, 복싱을 모두 소화했다.
링 위에서 그는 예상을 뒤엎었다.
물로 가득 찬 아쿠아 링에서도,
타이어에 발이 묶인 채 벌인 MMA 선수와의 혈투에서도 생존해냈다.
"복싱 만화 주인공 같다",
"진짜 파이터다"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드라마 '스위트홈'에서 까마귀부대 방진호 하사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줬고,
2024년 12월 개인전 '파편: CRANIUM'에서는
스케치와 설치미술로 내면을 드러냈다.
12미터의 초대형 설치작업 'CRANIUM'은 그 자체로 작가의 철학적 메시지를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관람객으로 하여금 초현실적인 경험을 하게된다.
그는 여전히 변화하고 있다.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경계를 넘나드는 삶 자체가 이미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들, 그는 오늘도 그것을 화폭에 담는다.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육준서는 늘 자신을 지탱할 중심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형 설치 작품을 만들고 '가디언(Guardian)'이라 이름 붙였다.
자신을 지켜주는 방패이자 단단한 명함 같은 존재.
최근 그는 KT, 삼성, 질 스튜어트 뉴욕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대중의 시선을 수용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솔직한 그림 사이의 간극을 잘 설정하고,
중심을 단단히 지켜가는 것. 그것이 그가 풀어내야 할 숙제다.
육준서의 예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의 작업은 완성된 발언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이다.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자,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UDT에서, 링 위에서, 캔버스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정해진 경로가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한 젊은 예술가의 여정을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목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