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쟈데 파도주티미(Jadé Fadojutimi)의 그림 앞에 서면, 먼저 숨이 멎는다.
가로 4미터, 세로 2.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 위로 쏟아지는 색채의 폭풍이 온몸을 휘감는다. ‘Resonate rain, rain down, down on me, and you, and ourselves’(2022).
비가 내리는 듯한, 그러나 비라기보다는 감정의 파도가 쏟아지는 듯한 이 작품을
한 컬렉터가 20억 원대에 사들였다는 소식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다.
그것은 29세 젊은 흑인 여성 화가가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에 섰다는 증거다.
1993년 런던에서 태어난 파도주티미는 나이지리아 이민자 가정의 맏딸로 자랐다.
런던 동부 일포드의 평범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엄마는 공무원, 아빠는 경영 컨설턴트였다.
집 안 벽에 붙어 있던 모네의 인쇄물이 그의 첫 그림이었다.
모네, 세잔, 호크니, 조안 미첼을 지금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는 색채에 대한 예민함을 타고났다.
노란색 2층 버스만 고집했던 어린 시절의 습관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다.
“노란색이 추상적인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한다.
그의 예술적 각성은 다섯 살 때 시작되었다.
폭스 키즈 채널에서 우연히 본 ‘세일러문’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12세에 200개 에피소드를 몰아본 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완전히 빠졌다.
우울했던 10대 시절,
세일러문의 사운드트랙과 강렬한 감정선은
그에게 “너의 그런 감정도 괜찮다”는 위로를 주었다.
일본 만화의 철학적 깊이와 색채의 폭발력이 그의 내면을 흔들었다.
지금도 일본어를 배우고, 교토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매년 일본을 찾는다.
영국에서 자랐지만 집 안에서는 나이지리아 문화가, 밖에서는 영국 문화가 공존하던 삶.
그 혼종성은 그의 그림에 그대로 스며든다.
슬레이드 예술대학과 왕립미술대학 석사를 마친 그는 졸업 후 4년 만에 ‘블루칩’이 되었다.
20대 후반에 이미 경매에서 20억 원 안팎에 낙찰되고,
테이트 미술관의 영구 소장작을 가진 최연소 작가가 되었다.
올해 가고시안 갤러리 소속이 된 그는 미술계의 ‘수퍼 메이저 리그’에 진입했다.
작품 가격은 10억 원대를 넘나들고, 추정가의 15배를 뛰어넘는 낙찰도 있다.
그의 작업 과정은 광기와도 같다.
밤에 영감을 기다리며, 음악을 틀고 춤을 추듯 캔버스 앞을 오간다.
일기장에서 나온 순간의 감정, 자연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온몸으로 쏟아낸다.
캔버스가 작다고 느낄 만큼 폭발적인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2~4미터 대형 작품을 빠르게 완성한다.
며칠 밤을 새우며 그리다 의사에게 치료를 권고받은 적도 있다.
“그림은 나에게 치료이자 구세주”라고 말하는 그는 안정제 대신 붓을 택한다.
파도주티미의 그림은 흑인의 그림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누군가를 하나의 범주에 가두는 것을 거부한다.
그의 색채는 인종이나 국적을 초월해, 순수한 감정의 언어로 울린다.
세일러문에서 시작된 애니메이션의 리듬, 모네의 빛,
자신의 일기장이 뒤섞인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숨 쉴 틈을 얻는다.
그의 그림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단지 색을 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내면이 폭발하며 만들어낸 세계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그는 이제 추상 회화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 ‘신세대 거장’으로 꼽힌다.
파도주티미의 색채의 폭풍 속에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한 젊은 예술가의 목소리가 있다.
문화적 정체성, 자아의 분열,
고독과 열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피루엣(pirouetting)’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목소리.
그의 화면은 우리에게 창문이 된다.
그 창문을 통해 우리는 반사된 자신의 모습과 저 너머의 현란한 세계를 동시에 마주하며,
우리 자신의 내면 풍경에 대한 질문으로 초대받게 된다.
바흐(Bach) _ 골드베르크 변주곡_아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