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1949년 파나마 운하 지대에서 태어난 리처드 프린스는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1973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타임 라이프 매거진에서
기사 클리핑 작업을 하며 예술가로서의 독특한 시각을 형성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에게 남는 것은 잡지에서 잘라낸 광고들뿐이었고,
바로 이 대중문화의 찌꺼기 속에서 프린스는 미국 사회의 욕망과 신화를 읽어냈다.
그의 대표작은 단연 1980년대부터 시작된 카우보이 연작이다.
말보로 담배 광고에서 카우보이 이미지를 재촬영하고, 텍
스트를 제거한 뒤 확대하여 갤러리에 전시한 이 작품들은 예술계에 충격을 안겼다.
원본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저 광고를 다시 찍었을 뿐인데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
원작자는 지적재산권 침해로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하지만 예술적 관점에서 이 질문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프린스가 촬영한 것은 단순히 카우보이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가 포착한 것은 1980년대 미국 사회의 왜곡된 의식이었다.
당시 카우보이는 이미 시대에 뒤처진 존재였다.
텍사스 시골에서 주말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현실의 카우보이는 초라했다.
그 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은 007 가방을 든 뉴욕 월가의 금융인이었다.
그런데도 말보로는 왜 카우보이로 광고했을까?
서부개척시대 영화가 만들어낸 환상 때문이다.
영화 속 카우보이는 정의로운 보안관,
총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초적 영웅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고독이었다.
싸움에서 팔을 잃거나 다리를 절면서도 지는 석양을 향해 홀로 걸어가는 카우보이.
외로움을 자신의 천성처럼 당당히 받아들이는 그 모습은 적극적 고독으로, 자신감으로 보였다.
그 멋진 고독과 함께 연상되는 것이 바로 씁쓸한 담배였다.
말보로는 이 환상을 활용했고,
사람들은 현실의 카우보이가 아닌 머릿속 이미지의 카우보이에 열광했다.
프린스는 바로 이 지점을 포착했다.
그가 재촬영한 것은 광고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과 환상 사이의 괴리,
그 왜곡된 의식이었다.
우리는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환상은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은 머릿속 환상을 원동력으로 움직인다.
이 착각의 메커니즘을 프린스는 말보로 광고라는 매개체를 통해 폭로했다.
인간은 현실을 마주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하지만,
전도된 세계와 몽상 속에 살면서 그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 삶이 얼마나 허망한 허구에 기초하고 있는지, 프린스는 이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표절인가?
원작 사진가는 카우보이를 찍기 위해 앵글을 잡았다.
하지만 프린스는 카우보이를 표절하기 위해 앵글을 잡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의식, 사회의 의식을 찍은 것이다.
만약 이것이 지적재산권 침해라면 사진가는 그 무엇도 찍지 못할 것이다.
모든 촬영 대상은 누군가의 지적재산이 될 수 있으니까.
법정은 원작자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예술을 향유하는 우리는 이에 대해 다시 질문해야 한다.
프린스의 작업은 카우보이에 그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펄프 로맨스 소설 표지에서 영감을 받은 간호사 그림 연작,
1986년부터 <Jokes> 연작 시리즈를 발표했다.
실크스크린 또는 스텐실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으로 아래 사진처럼
미국식 블랙코미디 텍스트가 적혀있는 형식의 작품들이다.
2014년 인스타그램 스크린샷을 캔버스에 인쇄한 뉴 포트레이츠 등 그의 작업은
늘 저작권 논란과 함께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출처가 아니라 그것이 향하는 목적지,
즉 관람자가 이미지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지점이었다.
2014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카우보이 작품은 370만 달러에 낙찰되었고,
타임지는 이를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이미지 중 하나로 선정했다.
샘플링과 리트윗이 일상이 된 시대에 프린스의 작업은
독창성과 저작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신디 셔먼, 셰리 레빈과 함께 픽처스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 프린스는 전유 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 전유미술(Appropriation Art)은 기존의 예술 작품이나 이미지를 차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미술의 한 경향을 뜻한다.
원본 작품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사용하여 독창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술방식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 전유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뉴욕 북부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프린스의 작품들은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MoMA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미국 대중문화의 거울을 들이대며, 우리가 믿는 것들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그리고 바로 그 허구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 예술가로 기억될 것이다.
법정에서는 졌을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연 우리는 현실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환상 속에 살고 있는가?
“예술이 아닌 듯한 것에 대한 의문, 그것이 바로 제 작업의 요점이에요. 이 새로운 방식의 초상사진들은 정의되지 않은 채 회색 영역에 속한 셈이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 위치한 이 사진들은 역사도, 과거도, 작품명도 없어요. 그것으로서 오롯이 존재할 뿐이죠. 하지만 곧 저마다의 영역을 개척할 것이라 생각해요. 책임은 제가 아닌 작품 자체에 있어요. 결국, 세상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제가 평생 해왔던 작업 중 이 작업만큼 저를 행복하게 한 것은 없다는 거예요.”
Arcangelo Corelli - Dodici concerti grossi O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