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로의 풍요를 읽다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세상은 때때로 날카롭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의 속도, 타인의 날 선 시선,

그리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엄격한 잣대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야위어간다.

마음이 메마르고 우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때,

나는 콜롬비아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의 화폭 속으로 도망치듯 숨어든다.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낸 듯한,

포근하고 넉넉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테로의 그림을 처음 마주하면 누구나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게 된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인물들은 하나같이 '뚱뚱하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히 살이 찐 상태가 아니라 터질 듯한 생명력이 응축된 '볼륨'임을 깨닫게 된다.


보테로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 속 인물들을 결코 뚱뚱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볼륨감'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그에게 부풀어 오른 곡선은 삶이 지닌 관능이자,

살아있다는 존재감 그 자체였던 것이다.


1.jpg 페르난도 보테로, 모나리자, 1978


그의 대표작인 '뚱나리자'를 떠올려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원작이 지닌 엄숙함과 신비로운 미소는 온데간데없다.

대신 터질 듯 통통한 볼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은 보테로의 여인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기묘하고도 유쾌한 변주는 우리를 짓누르던 고전의 권위와

'예술은 반드시 심오해야 한다'는 강박을 단숨에 깨뜨린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형태가 주는 즐거움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해방감.

그것이 보테로가 우리에게 건네는 첫 번째 선물이다.


보테로의 인생 역시 그의 그림처럼 처음부터 풍요로웠던 것은 아니다.

가난한 시골 도시에서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고,

유학 후 돌아온 고국에서는 추상화의 열풍에 밀려 단 한 점의 작품도

팔지 못하는 냉대를 겪기도 했다.

타이어를 팔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고단한 시절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2.jpg 9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남미의 국민화가 페르난도 보테로


1957년, 만돌린의 울림구멍을 의도적으로 작게 그리며 형태의 에너지를 발견했던

그 '유레카'의 순간은, 끊임없는 탐구와 성실함이 빚어낸 필연적인 우연이었다.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하루 10시간씩 작업에 매진했던 그의 열정은,

그가 그린 풍만한 곡선들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치열한 예술 철학의 산물임을 증명한다.


무엇보다 내가 보테로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 수백 점을 고국 콜롬비아에 기증하며,

가난한 이들조차 언제나 예술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미술관 하나 없던 척박한 환경에서 꿈을 키웠던 소년은,

거장이 된 후 세상의 모든 지친 영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캔버스를 안식처로 내어주었다.


Cap 2026-02-19 16-18-39.jpg 소풍 (Picnic), 2001


우울함이 마음을 잠식할 때, 보테로의 그림은 나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조금은 비대해도 괜찮다고,

삶의 무게에 눌리지 말고 그 무게를 넉넉한 부피로 바꾸어 즐겨보라고 말이다.

붓자국조차 느껴지지 않는 매끈하고 풍성한 표면을 눈으로 만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날 선 모서리들도 보테로의 인물들처럼 둥글게 다듬어진다.


예술은 때로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만,

보테로의 예술은 그저 우리를 품어준다.

그의 그림을 보고 느끼는 행복이 작가에게는 최고의 보상이었다는 고백처럼,

오늘도 나는 그의 둥근 세계 안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인생의 찬바람이 불어올 때,

보테로의 풍요로운 곡선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담요가 되어준다.


Cap 2026-02-19 16-20-29.jpg 자매들


6.jpg 대통령 가족, 1967년



Cap 2026-02-19 16-24-05.jpg




https://youtu.be/N7G9uatRp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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