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오늘은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몇일 있으면 3월이 온다.
말그대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온다.
봄바람을 제일 반가와 하는 것은 산에 들에 있는 꽃님들이 아닌가한다.
겨우내 움추렸던 싹을 피우기 위해 기지개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림 속의 꽃들은 조용히 말을 건다.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로, 각기 다른 언어로.
천경자의 꽃은 여인의 눈물을 닮았다.
'고(孤)'에서 머리에 꽃을 얹은 여인의 눈빛은 웃고 있으면서도 슬프다.
그에게 꽃은 곧 여성의 운명이었다.
아름답지만 시들 수밖에 없는, 그 덧없음 속에서도 피어나려는 의지.
그의 꽃들은 우리에게 인생의 그늘마저 아름답게 바라보는 법을 가르친다.
김재학의 양귀비는 다르다.
그의 붓끝에서 양귀비는 섬세한 데생 위에 회화성을 더해 윤곽이 흐릿한 사진처럼 보인다 .
배경을 중성색으로 단순히 처리함으로써 꽃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
담백하고 발랄한 그의 꽃들은 관조의 미학이다.
엄옥경의 모란은 어떤가?
김영랑이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라고 노래했듯,
그의 모란은 찬란한 슬픔이다 .
화려함 뒤에 숨은 그리움,
만개한 순간 이미 지고 있음을 아는 꽃의 숙명.
이수동의 꽃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잘 살아보세'에서 서로 다른 두 그루의 나무는 결국 하나가 되어 연리목 인연을 이룬다.
그에게 꽃향기는 인연의 향기다.
"우리, 꽃밭에서 만납시다"라는 그의 말처럼,
꽃은 만남의 장소이자 사랑의 증표다.
김일해의 꽃은 빛과 색의 축제다.
'빛과 색의 번역자'라는 별명처럼,
그는 대상의 고유한 색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강렬한 색채로 꽃을 재탄생시킨다 .
그의 꽃들은 역동적인 붓질과 함께 생명력을 얻어 춤춘다.
김환기의 꽃과 항아리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푸른 색조로 수렴되는 그의 꽃들은 항아리와 함께 한국적 정서의 정점을 보여준다.
색과 선이 극도로 절제될 때 오히려 무한한 여운이 피어난다.
작가님들, 꽃그림과 함께 희망찬 3월을 맞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