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그리는 사람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김수철의 소리그림을 마주한 순간,

나는 오래된 악보 한 장을 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리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소리가 된다는

그의 말이 결코 수사적 비유가 아님을 깨달았다.

반세기 가까이 음악가로서 세상의 큰 무대를 울려온 사람이,

그 울림을 캔버스 위에 조용히 내려놓는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Cap 2026-02-21 08-45-24.jpg 소리너머소리 2-3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생애 첫 개인전 '소리그림'을 보고,

나는 묘한 설렘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못다 핀 꽃 한송이', '젊은 그대'를 부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은 거인'이 이제 화가로 우리 앞에 섰다.

그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개막식을 통해

한국의 호흡을 소리로 새겼다.

국가적 순간을 대표하는 음향을 만들던 손이, 이제는 붓을 쥐고 있다.

그러나 그 붓끝에 담긴 것은 여전히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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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시청각의 경계를 넘어선 진동이다.

들리는 소리와 들리지 않는 소리, 가청의 경계를 넘어선 파동이 색과 선으로 번역된다.

「소리 푸른」에서는 자연의 에너지가 푸른 획의 중첩으로 숨 쉬고,

「소리너머 소리」에서는 침묵의 깊이마저도 고요한 울림으로 존재한다.


바람 소리, 정치인들의 논쟁 소리, 전쟁의 포성까지 일상에서 듣는

모든 소리가 그의 붓 끝에서 형상화된다.

특히 우주 어딘가의 행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소리를 200호 대작으로 표현한 작품에서,

나는 소리가 물질이 되고 물질이 다시 소리로 되돌아가는 순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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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회화가 음악의 시각화가 아니라,

소리의 본질을 회화라는 또 다른 언어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으로 들을 수 있는 세계, 귀로 볼 수 있는 세계를 제안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삼는 인간의 오만함을 꼬집는 작품들에서도,

그것은 시각적 고발이 아닌 소리의 불협화음으로 다가온다.

작품 앞에 서면 나의 숨소리조차 그의 필획과 공명하는 듯하다.


Cap 2026-02-05 13-45-51.jpg 소리너머소리 25


김수철은 오랜 시간 그림을 '곁에 두었다'고 한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음악 뒤편에서,

두 평 남짓한 부엌에서 몸을 꺾어가며 홀로 천착해온

사유의 결과물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30년 넘게 축적된 천여 점 중 백여 점만이 이번에 세상과 만난다.

그것은 화려한 데뷔가 아니라, 오랜 내공의 고백에 가깝다.


Cap 2026-02-21 08-42-35.jpg 소리푸른 36


"좋아하는 일이라면 배가 고파도 하고, 배가 불러도 끝까지 한다"는

그의 말은, 계산된 경력 관리가 아닌 진정한 사랑의 증거다.

독학으로 완성한 작품이라 우려했지만,

주변의 긍정적 평가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기교나 형식보다 진심이 담긴 예술이 갖는 힘이다.

수묵화에 푸른색과 주황색 등 여러 색을 입힌 색채 수묵화는,

전통을 존중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관을 보여준다.


Cap 2026-02-21 08-44-00.jpg 수철소리 3-4


이 전시는 단순한 화가의 데뷔가 아니다.

한 인간이 평생 품어온 세계관이 소리와 그림이라는

두 개의 통로를 통해 하나로 모이는 지점이다.

소리그림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온몸으로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가슴으로 듣는 일일지도.


Cap 2026-02-21 08-48-13.jpg 소리탄생 30'(왼쪽), '소리탄생 31




https://youtu.be/8BWa5mUYY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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