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붓이 캔버스 위를 스칠 때마다 세상은 달라진다.
박순철 화가의 작품 앞에 서면 누구나 그 사실을 몸으로 먼저 깨닫는다.
논리보다 감각이 앞서고, 이해보다 감동이 먼저 찾아온다.
그의 그림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느끼라고, 잠시 멈추라고 조용히 손짓할 뿐이다.
박순철의 작품세계는 한국적 서정의 뿌리 위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풍경 — 논두렁 너머로 지는 노을, 이른 아침 안개 속에 잠긴 산자락,
장터 어귀를 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 — 을 화폭에 옮기되,
그것을 단순한 재현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의 손을 거치면 익숙한 풍경은 낯선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감정의 결을 붓 끝에 싣는 것이다.
색채에 대한 그의 감각은 탁월하다. 원색의 충돌보다는 미묘한 중간 톤의 조화를 즐기며,
그 안에서도 찰나의 강렬함을 놓치지 않는다.
마치 잔잔한 수면 위로 돌멩이 하나가 떨어지듯,
화면 한 구석의 작은 색 하나가 전체를 깨우고 진동시킨다.
절제와 폭발이 공존하는 이 긴장감이야말로 그의 그림이 보는 이를 오래 붙잡아두는 힘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도 그의 미덕이다.
구상과 반추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국화의 여백 미학을 서양화의 질감과 겹쳐놓는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그는 어느 한쪽에 귀속되기를 거부한다.
그 경계 위에서 독자적인 언어를 만들어온 것이 그의 예술 여정이기도 하다.
그림이란 결국 화가가 세상과 나누는 가장 솔직한 대화일 것이다.
박순철의 작품은 그 대화가 얼마나 진실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완성도를 향한 집착보다 진정성을 향한 태도, 기교의 과시보다 감정의 정직함.
그의 캔버스 앞에 서면 우리는 잠시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오래 잊고 지낸 내면의 어떤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색채로 시를 쓰는 사람, 박순철. 그의 그림은 오늘도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